
역사학 전공자가 낸 국내 13번째 발해 박사학위로 2007년 8월 이후 5년 만에 나온 논문은 중국이 동북공정에서 주장한 발해사 왜곡의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권씨는 논문에서 특히 중국이 말갈(靺鞨) 국명설의 근거로 든 ‘713년 선로말갈사(宣勞靺鞨使)’를 발해뿐 아니라 발해를 중심으로 연합했던 말갈 제부(諸部)을 포섭하기 위한 사신의 직명(職名)이었음을 밝혔다. 중국이 주장하는 국명설의 근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권씨는 713년 발해 방문 후 714년 최흔이 요동반도 남단 황금산에 남겼다는 ‘홍려정석각(鴻驢井石刻)’에 새겨진 글씨 등을 재검토해 중국이 주장하는 말갈이 곧 진국(振國 또는 震國·발해)이라는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말갈의 실체란 진국(발해)을 포함한 말갈 제세력이었다”면서 “진국 중심의 말갈 연합세력을 회유하기 위한 선로(宣勞)에 있었기 때문에 ‘선로말갈사’의 직함을 갖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토번·돌궐·해·거란 등에게 침탈을 당했던 당은 말갈 제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발해를 포섭하기 위해 최흔을 파견했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중국은 최흔의 파견 이후 발해가 당의 책봉 관계가 됐다는 점을 들어 발해가 당의 통치를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씨는 “최흔의 노력이 결국 실패했고, 발해의 당 지방정권설이 허구인 것은 720년 당의 파병 요청을 발해가 거부한 것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이 때문에 당은 이후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흑수말갈과 유착했고, 그 결과 발해가 흑수말갈 토벌은 물론 732년에는 당나라 등주(登州)와 마도산까지 공격했다”고 강조했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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