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연휴의 최대 화젯거리는 단연 대선 후보들이었다. 연휴 직전 이뤄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전격적인 과거사 사과 회견,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호남 사과 발언,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검증 이슈들이 민심 속에 녹아들면서 대선판이 출렁거리고 있다. 본지 기자들과 의원들이 현장에서 지켜본 추석 민심은 지역별, 세대별로 갈렸다.
◆부산·경남(PK) 출신 야권 후보 등장에 요동치는 PK
더 이상 새누리당의 텃밭이 아니었다. 박근혜 지지세가 우세한 가운데 PK 출신인 문재인, 안철수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안 후보는 박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40%대 초반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노무현 바람’이 불었던 2002년 대선 당시에도 민주당 노 후보가 부산에서 득표율 30%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의 PK 위기감을 이해할 수 있다.
50대 이상의 고령층은 대다수가 박 후보 지지자였다. 부산에 사는 이모(70)씨는 “원칙과 소신을 가진 준비된 후보라서 박근혜를 지지한다”면서 “부산에서 나이든 사람들은 새누리당”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김모(57·자영업)씨도 “정치 경험이 많아서 믿음이 간다”면서 박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경남 창원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모씨는 “안 후보는 정치경험이 전무하고 소속 정당도 없어 신뢰감이 가지 않는다”면서 “문 후보도 ‘노무현 사람’으로 알고 있는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젊은층에서도 “박 후보가 정치를 오래하고 지지세력이 많아서 안정감있게 국정을 운영할 것 같다”(천모씨·27·여)는 평가가 나왔다.
그렇지만 20∼40대층에선 문재인, 안철수 후보 팬들이 많았다. 문·안 후보만 놓고 보면 대체로 20대에선 안 후보 지지자가, 40대에선 문 후보 지지자가 많았다. 부산에 사는 박모(38)씨는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야권단일 후보를 지원할 것이며 3자 구도라면 안철수 쪽”이라면서 “안철수도 단일화하면 민주당이란 정치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어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후보에 대해선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보다는 불통 이미지 때문에 거부감이 있다”고 말했다. 울산의 백모(25)씨는 “문 후보로 단일화되면 박 후보가 근소하게 앞설 것 같고, 안 후보로 단일화되면 안 후보가 근소하게 이길 것 같다”면서 안 후보 편에 섰다. 경남 김해에 사는 이모(43)씨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찍는다면 박근혜나 문재인이 될 것 같다”며 “안 후보는 조직도 없고 최근 언론보도만 봐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사원인 정모(28)씨는 “처음엔 박근혜에 호의적이었으나 문재인, 안철수 나오면서 분위기가 확 변했다”면서 “정치적 기반이 있는 문재인이 무소속 안철수보다 인기가 좋다”고 전했다.
PK지역 초선의원은 “안·문 두 후보가 부산의 명문고 출신이다보니 동문 관계에서 덕을 보는 것 같다”며 “50대 이상은 안 후보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젊은층은 검증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를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안철수 놓고 고민하는 호남
올 대선에서 호남 출신 후보는 없다. 문 후보에 대해서도 절대적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부산 정권’ 발언, 호남 홀대 정서가 누적된 결과다. 처가가 전남 여수인 안 후보가 ‘호남의 사위’라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밑바닥 정서는 “정권교체하려면 민주당 후보”, “안철수로 확 바꿔보자”는 기류가 뒤섞여 있었다.
전남 함평에서 농사를 짓는 심모(70)씨는 “안 후보는 경륜과 경험이 부족해 나라를 맡기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검증 단계에서 낙마할 수 있다”면서 “민주당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지역 언론인은 “60대 이상 서민들은 문 후보를 잘 모르면서도 단순히 민주당 후보라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광주광역시의 문모(60·건설업)씨는 “젊은 사람도 좋지만 정치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고 그 밑바탕엔 정당이 있어야 한다”면서 문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광주광역시에 사는 김모(50·회사원)씨는 “기존 정당 정치인이 싫다”면서 안 후보를 대통령감으로 꼽았다. 전북 장수의 정모(73·농업)씨도 “문재인은 워낙 부산 사람 느낌이 강하다”면서 거부감을 드러냈다. 전북 남원에서 자영업을 하는 유모(39)씨는 “안철수가 민심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해온 기성 정치권을 대신할 주자로 나온 만큼 민심을 잘 살피며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호남의 박 후보 지지율은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박정희 향수가 남아있는 시골을 중심으로 박근혜 지지세가 확실히 느껴졌다. 전북 정읍의 전모(79·여)씨는 “박정희 시절 먹고살게 됐다. 박근혜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면서 “이번에 박근혜 도와주자는 말들이 많다”고 했다. 안철수 팬인 김모(29·여)씨는 “전북 지역은 총선 때도 새누리당 정운천 후보가 36% 정도 득표했을 정도로 여당 지지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노년층에서는 박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안철수 지지세는 광주·전남보다 전북 지역에서 더 강했다. 전북 출신 초선인 김성주 의원은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은 뜨거운데 안 후보냐, 문 후보냐를 놓고 젊은층과 장년층의 선호가 갈리고 있다”면서 “호남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무슨 얘기 나눴을까 사흘간의 추석 연휴를 끝낸 막바지 귀경 행렬로 2일 오전 서울역이 붐비고 있다. 추석 연휴를 거치면서 대선 민심도 요동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변화에 민감하고 사회적 유동성이 강한 수도권에선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체적으로 야권 후보 선호도가 박 후보 선호도를 앞질렀다.
취업준비생인 정모(27·여)씨는 “박 후보가 되면 우리나라 빈부격차를 더 키울 것”이라면서 “야권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인 양모(26·여)씨는 “박 후보는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로 대북·재벌 정책도 확고해 보이나 역사 의식이 퇴행적이어서 망설이게 된다”면서 “개인적으로 안 후보와 박 후보가 6대 4”라고 말했다.
49세의 회사원인 원모씨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존 정치권과 다른 새로운 인물이 나올 필요가 있다”면서 “안철수가 되면 좀 달라지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추석 연휴 직전 이뤄진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와 관련, “사과는 했지만 기본 인식이 달라지겠느냐”고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경기도 부천의 안모(36·회사원)씨도 “세상이 민주화됐다고 하는데 아직도 구태를 못 벗은 사람들이 설쳐대고 있다”면서 “새로운 사람이 썩은 정치판을 바꿔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최모(45)씨는 “정치권에 몸담고 있지 않았어도 누구든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면서 “의사로 출발해서 유명 벤처기업을 일군 안 후보는 국정 운영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문 후보를 지지한다는 정모(25), 이모(29)씨는 각각 “국민이 원하는 깨끗한 정치를 할 것 같은 이미지”, “인상도 좋고 아직까지 별다른 의혹이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박 후보 지지자들은 박 후보의 경륜을 높이 평가했다. 야권 후보에 대해서는 “안철수는 너무 불안하고, 문재인은 너무 좌편향이라 싫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권의 실세였던 만큼 연대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경기 안양동안을)은 “안 후보에 대한 검증 영향으로 안 후보의 지지율 거품이 빠지는 분위기지만 수도권 전체적으로는 20∼40대를 중심으로 새누리당이 계속 취약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남규 기자, 편집국 종합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