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의 열악한 실습·작업 환경이 학생 건강을 위협하고 화재 위험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실기실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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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시내 한 사립대 미대 실기실 입구에 석유, 페인트 등 인화물질을 담은 통이 쌓여 있다. 권이선 기자 |
서울시내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생마다 작업하는 내용이 달라 학교에서 안전관리를 하기가 어렵다”며 “안내문 등을 부착해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겨울철에는 인화성이 강한 래커나 페인트, 핸디코트 같은 유기용제를 옆에 두고 작업하면서 개인 난로를 사용하거나 담배를 피워 화재 위험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경기도내 한 대학 서양화과에 재학 중인 이모(25·여)씨는 “2년 전 난로를 쬐며 작업하다 우리 과에서만 두번이나 불이 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2006년 경기도내 대학 미대 실기실에서는 전기난로로 인해 불이 나기도 했다.
학생 건강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미대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유기용제는 호흡만으로도 체내에 흡수돼 두통, 구토, 치매, 암, 시력저하 등을 유발한다. 2009년 조명계 홍익대 교수(문화예술경영)가 전국 19개 미술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기실 내 공기 흡입을 위해 후드 시스템을 갖춘 곳은 2개 대학에 그쳤다. 게다가 추위와 벌레 등을 이유로 창문을 열지 않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은 공기 중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경기도내 한 사립대 미대생 양모(25·여)씨는 “환풍기가 고장나 대학 측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주무부처인 소방방재청은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인화물질이 어느 정도인지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자연과학 실험실의 시설 안전관리를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담당하는 것과 달리 미대 실습실은 별도로 관리하는 기관이 없다.
경인교대 김미경 교수(보건환경)는 “대학은 법의 바깥에 있는 사항들이 많아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법적인 조항이 없다”며 “후드 설치나 독성 폐기물 처리와 관련해 의무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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