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 설득 위한 외교력 극대화 필요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제아무리 무덥던 여름도 계절이 바뀌면 서늘한 바람에 아침을 내주듯 인생도, 국운도 다 때가 있게 마련이다. 한반도에 통일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 들어 한반도 통일을 직접 거론하는 외신이 부쩍 눈에 띈다. “미·중, 북한 붕괴 대비 책임구역 미리 정해야” “북한 전조(前兆) 없이 갑자기 붕괴 가능성 크다” “북한 붕괴 시 미·중 새로운 38선 긋는다” “북한 붕괴 시 중국이 영변 핵시설 접수 가능성” “북한 붕괴, ‘가능성’이 아니라 ‘언제’에 초점 경고” “중국, 한국의 북한 흡수통일 수용할 수도” “북한 무력통일 기회 상실…남한 주도 통일 현실적” 등등. 제목만 봐도 깜짝 놀랄 만한 내용들이다. 통일은 점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진화 중이다.
한반도 통일의 운을 뗀 매체는 러시아 신문 로시이스카야 가제타다. 이 신문은 지난달 ‘북한 붕괴 가능성 대비 방안’이라는 미국 랜드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해 “지도자의 급사나 내전 등으로 북한 정권이 갑자기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국과 남한도 수십만 명의 난민 유입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미국·중국은 미리 예상 시나리오를 만들고 책임 구역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신문은 또 ‘새로운 38선’을 놓고 미·중 간에 비밀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명보는 ‘한반도 급변사태 대비’라는 칼럼을 통해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면 한국이 끌어안을 힘이 없어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중국은 반드시 주도면밀한 대비책을 세워 북한 핵무기 유실과 난민 발생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 발생 시 인민해방군 1개 여단을 영변 핵시설에 투입해 장악하고, 두만강 하구를 막아 미·일 잠수함 침입을 차단하며, 1개 여단을 신의주에 진주시켜 난민의 중국 유입을 막고 해병대로 톈진·산둥반도와 가까운 황해도 장산곶을 점령해야 한다는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청샤오허 중국 인민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지난주 한 학술회의에서 “한국이 통일의 대가를 책임질 수 있고, 중국이 한반도에서 계속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도 수용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주도의 흡수통일에 찬성한다는 놀라운 얘기다. 한국의 통일연구원 연구원들이 밀실에서나 할 만한 논의를 중국 학자가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한반도 통일에 걸림돌 혹은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주변 국가들의 동향도 긍정적이다.
지난 6월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북한 핵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핵 불용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는 파격에 가깝다.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와 추가 핵실험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을 국빈 초청해 최고의 예우를 한 것도 예전과 다르다. 체제 붕괴의 신호탄으로 평가되는 북한 외교관의 망명 사건도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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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 논설위원 |
문제는 현행 국제법상으로 북한 붕괴 이후 우리 주도의 통일 시나리오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을 계기로 북한도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붕괴하면 가장 먼저 유엔이 들어가게 돼 있다.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유출, 김정은 유고, 쿠데타, 대규모 탈북사태, 북한 내 한국인 인질사태 등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한 ‘작전계획 5029’ 발동 이후 한·미 사이의 북한 땅에 대한 인식 차도 문제다. 북한 땅이 우리에겐 미수복지역이지만 미국에는 유엔 회원국 영토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의 외교력이다. 다행히 박 대통령은 통일의 키를 쥐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 시진핑 주석과 친밀하다. 더욱이 결정적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유엔 사무총장도 한국인 반기문이다. 국운이 함께한다는 징조다.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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