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사회의 기원은 바이킹 시절로 올라간다. 바이킹들이 타는 배는 갑판과 선실의 구분이 없다. 상석에서 호의호식하는 이와 밑에서 노나 젓는 이의 구분이 없다. 특산품을 주고받는 교역이건 약탈이건 그 결실을 어디 감추고, 누구만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연스레 투명성이 지배했다. 지금도 북유럽의 민간 항공기에는 일등칸이 없다. 공무원은 일등칸을 타지 않으며 국가 세비로 사는 왕실도 이에 따른다. 세금을 허튼 데 쓰는지 돋보기로 들여다보고, 사회적 통념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소한 것이라도 여론의 철퇴를 맞고 선거에서 패배하게 된다.
평판사회의 교육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사귀는 사회성에 초점이 놓인다. 공부를 조금 더 잘한다고 우등생이라고 받들지도 않는다.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서 그러지 못한 친구들보다 훨씬 나은 직장이나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서로 가는 길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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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주덴마크 대사 |
평판사회의 작동 원리를 들여다보면, ‘옌테 법칙’이 눈에 띈다. 1930년대에 소설에 등장한 이 법칙, 즉 “네가 뭐라도 된 척/ 우리보다 똑똑한 척/ 우리보다 많이 아는 척/ 우리보다 더 중요한 척/ 뭐든지 잘하는 척/ 모두가 너를 대단하게 여기는 척/ 뭔가 우리에게 가르칠 수 있는 척하지 말라”는 내용은 평판사회의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
이런 평판사회에는 대등하고 열린 토론이 중요하다. 결론을 내기 전까지 어떤 목소리도 똑같이 중요하지만 일단 결정이 되면 이를 존중하고 지킨다. 나는 반대했다고 거리로 나서거나 고집을 부리지도 않는다. 지구 환경을 지키자고 화석에너지를 쓰지 말자고 합의하면 정권이나 리더가 바뀌어도 꾸준히 지킨다.
물론 북유럽 평판사회가 모든 사회의 절대적 이상형이 될 수 없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보편적 복지가 ‘글로벌 시대’와 어떻게 균형을 이루게 될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행복도 불편도 함께 나누고 결속을 중요시하는 평판사회의 특징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비춰 보는 거울임에 틀림없다.
김병호 주덴마크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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