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통일단체와는 옥석 가려 손잡아야 “1950년대에 흐루쇼프가 ‘너희를 묻어 주겠다(We will bury you)’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유세계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의 번영과 복지를 이룩했습니다. 반면 공산세계에서는 실패와 기술 낙후, 보건의료 수준의 퇴보는 물론 기본 물자인 식료품 부족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번영은 자유에서 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자유가 바로 승리자입니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6월 12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고르바초프 서기장, 평화를 원한다면, 소련과 동유럽의 번영을 원한다면, 자유를 원한다면, 이 문을 여시오!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 패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1775),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1863),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1963)와 함께 미국 4대 명연설에 꼽히는 레이건의 열변은 감동 그 자체였다.
레이건은 “동서는 무장했기 때문에 서로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불신하기 때문에 무장한 것입니다. 동서의 차이는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습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이 ‘이 벽은 무너질 것이다. 믿음은 현실이 된다’고 쓴 글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믿음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을 이길 수 없으며, 자유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했다. 2년 후 베를린 장벽은 그의 말대로 거짓말처럼 무너졌고, 독일은 통일됐다. 다시 2년 후엔 70년 동안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공산주의 종주국 소비에트 연방마저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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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 논설위원 |
박 대통령의 구상을 현실화하려면 기존 민간통일단체의 총체적 점검과 결집이 필요하다. 적잖은 통일단체는 앵무새처럼 북한의 주장을 따라하거나 동조하는 진보·종북적 색채가 강하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 헌법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정당·종교·시민단체로 구성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는 정권에 따라 성격이 오락가락하는 등 제 역할을 못해왔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통일부는 업무 중복이 많다. 이참에 기구·조직별 역할 분담과 기능 조정 등 발전적 재조직화가 필요하다.
1987년 창립된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회장 설용수)은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지난해 “통일운동의 주체는 국민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통일기원 국민 대토론회’ ‘통일준비국민위원 출범식’ 등 민간 통일운동의 저변 확대에 공을 들여왔다. 70개국 대표가 참가한 임진각 망배단에서의 ‘평화통일대회’, 재일교포 청년·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자전거종주단의 한반도 평화통일기원 한·일 3800㎞ 종주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요즘도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고 있는 시민단체 초청 통일기원 토론회에선 통일준비국민위원·중앙위원 4000여명에게 위촉장이 수여됐다. 준비된 통일 일꾼들이다.
새 출발하는 통일준비위는 정부 주도로 하다 어용으로 전락한 관변 단체들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야 한다. 벌써 거론되는 일부 정치인들의 자리 나눠먹기는 안 된다. 수십 년 전부터 통일운동의 씨앗을 뿌려온 민간 통일운동단체들의 피눈물나는 노력과 실적은 평가돼야 마땅하다. “자유가 승리자”라는 레이건의 말처럼 자율적으로 성장해온 민간 단체의 경륜과 축적된 노하우는 통일운동의 더할 나위 없는 귀한 자산이다. 통일의 주체는 국민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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