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가 올해로 20년째를 맞았지만 지방재정 건전성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지자체가 재정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중앙정부의 복지사업과 세제 정책에 휘둘리는 등 복합적 이유 때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도입한 지방자치제도가 경제적 문제에 발목을 잡힌 모습이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 가운데 지방재정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2년 10월 14일 전남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에서 열린 포뮬러원(F1)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레이싱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다. F1과 같이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대규모 국제행사 등으로 지방재정이 악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진출처 |
26일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2년 통합회계 기준으로 직영기업을 포함한 지자체 부채는 47조7395억원이다. 공사·공단 등 지방공기업 부채까지 더하면 100조1740억원이다. 지자체의 부채는 채무 이외에 임대보증금, 퇴직급여충당금, 미지급금, 선수금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지자체가 전체 재원 중 스스로 조달하는 자주 재원의 비율인 재정자립도는 떨어지고 있다. 지방분권 이후 20년 동안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60% 중반에서 지난해 최악의 수준인 51.1%로 하락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국고보조금이나 교부세 등으로 재원을 충당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지자체 재정난의 원인은 안팎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지자체가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당장 급하지 않거나 중복되는 사업을 충분한 검토 없이 진행하는 일이 많다. 선출직인 자치단체장이 재선을 의식해 임기 내에 가시적 업적 창출에 매달리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사원이 지난해 5∼6월 안전행정부와 광역시·도를 대상으로 주요 사업 예산편성 및 집행실태를 감사한 결과 청주시를 포함해 54건의 방만 예산집행 사례를 적발했다고 지난 2월 밝혔다. 중복되는 사업이거나, 부실한 타당성 검사를 거쳐 사업을 추진한 것이었다.
지자체 재정난의 외부적 요인은 중앙정부의 지방이양사업에 대한 지방비 부담이 급증한 것이다. 특히 복지비 부담이 가장 큰데 저출산과 고령화 등 사회구조의 변화로 사회복지부문 지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방재정이 원천적으로 중앙정부에 종속된 상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세 대비 지방세의 비중은 8대 2여서 지자체는 필요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주만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지방재정 관련 토론회에서 “그동안 지방재정 낭비 등이 불거질 때마다 재정낭비를 초래하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처방이 강화됐고, 이에 따라 지방정부의 지출자율성은 오히려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의 지출구조와 세수 배분구조를 유지할 경우 현재 국세 대 지방세 비중을 8대 2에서 6대 4로 전환하더라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로부터 이전받는 재원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성이 깊다”고 지적했다.
◆지방 자율성 부여해 자치제 정상화해야
정부는 지방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지자체의 재정자율성과 책임성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의 재정 건전화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지방재정 위기를 감시하고 재정위기 단체에 재정건전화 조치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도로 ‘지방재정위기 사전경보시스템’이 있다. 지자체 재정위험등급 ‘주의’ 단체는 재정건전화 권고를 받고 ‘심각’ 단체는 재정건전화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재정위기 단체로 지정되면 지방채 발행 등에 제한을 받는다.
안행부는 지방공기업, 출자·출연기관의 부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지방부채 통합관리체제를 내년부터 시행해 지자체가 지방재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우발부채까지 종합 관리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지자체가 대규모 행사, 국제경기 등을 유치할 때 사업타당성 평가를 먼저 실시해야 하는 ‘지방재정영향평가제’도 도입된다. 이에 따라 지방재정 투자심사를 강화해 지방 투자사업에 대한 예산편성 시 500억원 이상 투자사업의 경우 안전행정부 장관이 지정하는 전문기관에서 사전타당성 조사를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방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자체의 재정자율성을 확대해 책임성도 함께 높일 것을 주문한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자치가 아니라 중앙에 종속되는 구도로 가면서 지역에서 원하는 사업이나 복지 부분이 지자체별로 차별화되지 않고 이뤄졌다”며 “지방분권이 정상화되려면 지자체장에게 예산편성과 자치권한을 주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