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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환자를 위한 재단은 없었다”

입력 : 2015-03-18 08:00:00 수정 : 2015-03-18 09: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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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재단 산하 의원, ‘진타’ 처방은 전무…의료비 지원·편의 ‘환자 족쇄’
세계혈우연맹(WFH) “치료제 접근 제한 둬선 안돼”

#. A와 B 두 종류의 약이 있다. A는 주사용수를 분말 타입의 약품과 혼합해야 한다. 이후 용해된 주사액을 5cc 주사기에 네 차례에 걸쳐 담는다. 그리고 네 차례에 걸쳐 총 20cc를 정맥에 주사하게 된다. 반면 B는 ‘올인원(All-in-one) 방식이다. 말 그대로 주사기 채 두 차례 사용하면 된다. 편의성을 개선한 것이다. 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2000IU까지 용량을 보유하고 있어 투여 횟수도 적다. 하지만 환자들은 "주사용제의 누출 위험성이나 감염 염려가 없어 무엇보다 안전성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A는 녹십자가 만드는 그린모노, B는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가 만드는 진타다. 두 약 모두 혈우병 Ⅷ인자 제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또 한국혈우재단(이하 재단) 산하 의약품심의위원회에서도 두 약 모두 심사를 통과한 약이다.  

녹십자 그린모노(사진 왼쪽)는 원 제제를 주사용수와 함께 섞은 뒤 주사기에 담아 혈관에 주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반면 화이자 진타(사진 오른쪽)는 주사기를 누르면 두 성분이 섞여 바로 주입할 수 있다.

하지만 재단 산하 의원(서울, 부산, 광주) 세 곳에서 특정 회사 제품만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 결과 진타는 2013년 7월 한국혈우재단에 혈액응고인자제제로 정식 등재된 후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처방되지 않았다.

심지어 재단 산하 의원 세 곳은 현재 진타를 구비조차 안하고 있어 결국 특정회사 제품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진타, 안전성·편의성 우수에도...‘그림의 떡’

혈우병치료제는 크게 혈액제제와 유전자제제로 나뉜다. 타인의 혈액을 추출해 혈액응고인자를 만드는 혈액제제는 감염의 우려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03년 혈우병 환자와 가족 등 95명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의 혈액으로 만든 혈액제제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됐다며 제약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다. 혈액응고인자를 유전자조합으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진타는 또 '합성 펩타이드 친화성 리간드'를 사용해 바이러스의 감염 위험성을 줄였다. 이를 위해 한국화이자 측은 감염물질 제거하고자 두 번에 걸친 정교한 정제기술을 더했으며 용매·세제 나노여과법을 추가로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혈우병 치료제제 중 유일하게 2000IU까지 공급하고 있다. 고용량이 필요한 환자가 여러 번 투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인것이다.

국내 일부 혈우병 환자들(약 20~30명)이 재단을 거치지 않고서라도 진타를 처방받고 있는 이유다.

◆재단 "대체 치료제 갖춰져 있다"

따라서 혈우병 환자들은 ‘재단 산하의원에서도 치료제를 환자가 선택할 선택권을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지만 재단은 여전히 처방만큼은 미온적이다. 이미 혈액제제와 유전자재조합제제 두 종씩을 포함한 총 4종류의 약품이 처방되고 있어 현재 이들 약품만으로도 재단 의원 내 혈우병 관리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의 입장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혈액내과 전문의는 “혈우병 치료제를 선택할 땐 환자와 충분히 상의해서 시범적으로 약을 투여한 뒤 추적관찰을 한다. 만약 이상반응과 효능이 차이가 없다면 약을 바꿔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혈액내과 전문의 역시 “환자 개개인마다 궁합이 맞는 치료제가 있을 뿐 반드시 특정약만 처방하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혈우병 환자 A씨는 “정보가 많지 않던 과거에는 처방하는 대로 약을 타서 썼지만 지금은 다르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약이 더 잘 맞더라 하며 서로 공유도 많이 한다. 특정약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에게 잘 맞는 약이 무엇인지 써볼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어느 병의원이나 어떤 질병에 대해 시판된 모든 치료제를 전부 구입해서 비치해 두는 곳은 없다”면서 “꼭 그렇게 해야만 환자에게 이익이 되고 의사의 처방권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진타의 가격은 IU당 512원으로 애드베이트(IU당 471원)에 비해 고가의 의약품”이라며 “그럼에도 그 제품을 처방해야 하는 것인지 지속적으로 논의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혈우병 환자 “치료제 선택이 곧 생존권이다”

그럼에도 전체 혈우병 환자의 70%가 재단 의원에서 치료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혈우병 환자들은 이를 '선점효과'라고 주장한다. 과거 1980년대 혈우병은 건강보험에서 전체 치료비의 80%를 지원했고, 나머지 20%의 치료비는 환자 본인 부담이었다. 하지만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혈우병 특성상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녹십자 고(故) 허영섭 회장의 출연으로 1991년 혈우재단이 설립됐다. 설립과 동시에 재단은 환자 본인부담금 20%의 약품비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혈우재단 산하 의원에서 혈우병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이후 국고 지원이 확대되면서 진료비의 90%는 건강보험에서, 나머지 10%는 ‘희귀난치성의료비 지원 사업’ 명목으로 현재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재단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일선 병원에서 혈우병이라는 첫 확진을 받게 되면 의료진이 혈우재단에 가서 치료받을 것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희귀난치성의료비 지원 사업에 있다. 재단 산하 의원을 이용한 환자의 경우 재단을 통해 손쉽게 희귀난치성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대학병원이나 의원을 이용할 경우 재단에 등록된 환자라 하더라도 증빙자료를 관할 보건소에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만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지원 혜택을 받기 위해 여러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세계혈우연맹(WFH)은 설립이념을 통해 “지역에 상관없이 출혈 장애를 가진 사람 모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치료제(Treatment For All means)의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혈우병 치료에 있어 ‘차별’을 두지 말라는 의미다.

혈우병 환자 B씨는 “갑작스레 항체가 생기면 약을 즉시 바꿔줘야 하는 것이 혈우병 환자다. 두 번 맞을 것을 한 번으로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면서 “혈우병 환자는 평생 병마와 싸워야 하는 만큼 그런 의미에서 치료제 선택은 중요한 문제다”고 말했다. 

헬스팀 최성훈 기자 csh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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