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전쟁에 비중 두었지만
1990년 이후 글로벌 사관 제시
국가 경계 넘어 사람관계 중점
분열보다 상호의존 틀로 이해
이리에 아키라 지음/이종국 옮김/연암서가/1만5000원 |
냉전 종식 이후 세계질서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이해하는 것은 현실주의적인 관점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두 나라가 세계 1, 2위 경제대국으로서 다방면에서 상호의존적이며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흔히 알고 있는 18세기 중반 이후의 세계사는 사실상 유럽사다. 근대 유럽에서 주권국가가 성립하고 각국의 정치나 경제, 그리고 국가 간의 관계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또한 문제는 명백하다. 당대 유럽 열강 중심의 인식은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한 아시아, 중·근동, 아프리카, 남미 등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중 양대 체제, 유럽사 중심의 세계사 이해가 보여주는 것은 기존 역사학의 중심에 국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역사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저자는 “(최근) 20, 30년간, 특히 1990년대 이후 역사 연구의 동향에 큰 변화가 있었다”며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국가 단위를 넘어선 ‘글로벌 사관’이다.
글로벌 사관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세계 전체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자세를 가지며, 국가나 문화 등의 경계를 넘어선 사람 간의 관계를 파악하려 한다. 지구에 생존하는 자연환경도 역사 연구의 시각 속에 포함시킨다. “인류를 형성해 온 에코 시스템,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등은 ‘혹성사’(惑星史)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역사 인식에서는 국가의 발전이나 국가 간의 항쟁과 같은 주제가 자리 잡고, 그 결과 외교나 전쟁으로 비중이 기우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러나 글로벌 사관을 도입하면 국가보다 전 인류, 분열보다 상호의존이 주된 틀이 되어간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역사학은 국가를 중심에 두고 세계질서를 해석해왔다. 현대 세계질서를 미국,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이해하는 게 대표적이다. 하버드대 이리에 아키라 명예교수는 국가 중심의 역사학이 아닌 글로벌한 시각에 입각한 새로운 역사학을 지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역사 왜곡 심화는 편협한 국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왼쪽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일본 출신인 저자는 1988년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하버드대 명예교수로 있는 학자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 왜곡을 질타하는 집단 성명 발표에 참여한 학자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 참여는 일본의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날카롭게 비판해 온 이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도 이런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일본의 정치와 언론의 경향이, 보수적 특히 편협한 국가주의로 기울고 있다”며 “국가의 역사를 독선적인 해석으로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현실 세계에서 고립된 의식을 넓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글로벌 사관에 입각해 “일본인이 이런 흐름을 부정하고 국가 중심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현대의 세계를 배척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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