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상처와 아픔을 소설로 아우른 김탁환(왼쪽), 방현석. 이들은 세월호와 연관된 ‘아름다운’ 인물들을 돌아보거나 비극을 만들어낸 시대 배경을 탐색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노동소설로 출발해 시대의 문제와 존재의 무게를 소설로 담아온 방현석(56)은 세월호 희생자 중 유일하게 외국 출신인 베트남 이주여성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중편 ‘세월’(아시아)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김탁환이 세월호의 상처를 정면에서 응시했다면, 방현석은 세월호의 비극을 낳은 시대의 전도된 가치체계에 방점을 찍는 편이다.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여행은 멋진 것일까’에서는 세월호에서 사라진 아들과 인도네시아에 둘이서 같이 가기로 예약해놓은 항공권과 아들의 여권을 들고 출국도장을 찍어달라고 애원하지만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공항 직원들의 반응에 절망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외국 여행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해 영원히 입국도장을 찍지 못하게 된 아내를 둔 공항 직원이 불이익을 무릅쓰고 아이의 여권에 출국도장을 찍어주자 아버지는 말한다. “정후는, 우리 정후는 이 나라를 떠난 겁니다.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고요. 입국도장이 찍히기 전까진, 정후는 지구를 누비며 여행 중입니다.”
김탁환 소설 속 ‘눈동자’의 인물이 마지막으로 구해낸 다섯 살짜리 아이는 방현석의 중편 ‘세월’의 베트남 이주여성 가족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제주도로 이사하기 위해 세월호에 탔던 ‘린’과 그녀의 살뜰했던 한국 남편, 그리고 살아남은 여자 아이의 여섯 살 오빠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린’만 돌아와 사망자로 확인됐지만 남편과 아들은 미수습된 상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 이주민 가족, 생존자, 미수습자까지 겹친 특별한 경우이다. 방현석은 일찍이 ‘베트남을 생각하는 모임’에 참여해 수십 차례 베트남을 오가며 현대사의 상흔들을 소설에 담아왔다. 그가 딸 가족의 비보를 접한 뒤 한국에 와서 1년 가까이 체류했던 이들과 더불어 지냈던 내용을 소설에 담아낸 것이다.
베트남전쟁 전사 출신 아버지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와 한국으로 시집간 딸의 이야기를 병치시키면서 “한국에서 발생한 참사이지만 우리 시대가 통과하는 물질중심주의의 투철한 가치체계 문제”를 탐색한다. 베트남 아버지는 “자본주의를 찬양하던 남부정부 밑에서도 서로 목숨까지 나누며 살았는데 정작 사회주의로 통일을 한 나라에서 그 어떤 자본주의에서보다도 더 지독하게 제 몫만을 챙기는 세월을 살게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라고 한탄한다. 가족의 장례를 위해 한국에 체류하는 린의 여동생은 보상금을 들먹이며 비난하는 사람들을 접하고 “한국이 끔찍하다”고 울먹인다. 베트남에서 기다리는 어머니도 그곳 사람들에게서 “돈 보내주는 기계가 고장나서 어떻게 하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1년 동안 사위와 외손자가 물속에서 올라오기를 기다리다 베트남으로 돌아간 이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베트남 남부 고향까지 찾아갔던 방현석은 “이 소설이 좋은 가정을 이루었던 베트남 여성에 대한 추모와 외롭게 수습을 기다리는 가족에 대한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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