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자정 무렵 일산의 밤하늘을 가르며 “끼룩 끼룩”거리며 날아가는 한 무리의 기러기 떼를 만났다. 아마 고양시 한강변 장항습지나 김포의 농경지까지를 목적지로 정한 듯 생각했다. 올해도 변함없이 추수철에 맞춰 기러기의 계절이 시작됐나 보다.
우리나라에는 쇠기러기, 회색기러기, 흰기러기, 큰기러기, 흑기러기 등 10여 종이 기록돼 있지만 주로 ‘쇠기러기’와 ‘큰기러기’가 도래한다. 가락지나 전파 발신기를 이용해서 기러기의 이동경로를 추적해보면 알래스카와 인접한 러시아의 최동북단 콜리마지방이나 아나디르 지방 등의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마친 기러기들이 가을이 깊어지면 우리나라로 이동해오는데, 이동거리가 4000㎞가 훨씬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많은 수의 기러기가 북쪽의 철원평야에 먼저 도착해 추수 후에 떨어진 벼 낱알이나 식물의 뿌리 등을 먹으며 오랜 여정에 지친 몸을 회복한다. 철원에서 계속 지내는 기러기도 있지만 문산, 김포, 천수만, 금강, 영산강, 낙동강과 주남저수지 등 여러 곳으로 분산해 겨울을 난다.
기러기가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한다고 해 부부간 신뢰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이런 의미로 전통혼례에서 전안례라고 하여 살아있는 기러기를 사용했다는데 구하기 어렵다 보니 목각으로 만들어 혼례 예물로 사용해왔다. 연구 결과 조상들의 생각대로 기러기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한다. 극지방과 가까운 번식지의 혹독한 기후와 월동지역의 추위, 부족한 먹이와 밀렵 등의 열악한 환경을 버티고 4000㎞ 이상 되는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자손을 번성시키려면 암수가 함께 했던 경험이 중요하다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중국 고사성어 중 ‘남다른 큰 뜻’을 의미하는 홍곡지지(鴻鵠之志)의 ‘홍’과 ‘곡’은 각각 큰기러기와 고니(백조라고도 한다)를 말한다. 내년 3월에 홍곡지지를 이루시는 분은 큰기러기와 고니와 같은 주변의 생물과 자연환경을 지키는 일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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