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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

입력 : 2009-12-15 19:05:47 수정 : 2009-12-15 19: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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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 주제 국제 학술대회 열려
“조선의 위민제해(爲民除害) 정책으로 한반도에서 호랑이 개체수가 급감했고, 일제 때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이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명줄을 완전히 끊었다.”(김동진 한국교원대 한국사 교수)

“한반도에서 백두산 지역의 호랑이 개체수를 회복시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극동 러시아 아무르 호랑이에게 닥친 생존 위협 제거 지원에 있다.”(이향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2010년 경인(庚寅)년 호랑이해를 앞두고 한민족과 함께해온 우리 민족의 상징 동물인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어떻게 우리와 관계를 맺어 왔고, 어떻게 멸종됐는지를 살펴보고, 호랑이 개체수를 살리기 위한 과제를 논의하는 ‘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이란 주제의 국제학술대회가 15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최돼 전문가들의 활발한 토론이 펼쳐졌다.

◇호랑이는 고려시대까지는 인간과 평화로운 공존을 했으나 민본주의를 내세운 조선시대에 들면서 포호정책이 실시돼 개체수가 급감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학술대회에서 한국교원대 김동진 교수는 ‘백성을 위해 호랑이를 잡은 조선’이라는 논문에서 “호랑이가 한반도에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만년 내지 9000년경으로 추정되며, 인도차이나 북부와 중국 남북지역에서 기원한 호랑이는 동서양을 연결하던 사막길인 실크로드의 좁은 생태통로를 이용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아무르 지역과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반도에 정착한 호랑이는 이후 고려시대까지 대체로 평화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여기에는 살생을 금지한 불교의 영향이 컸다. 이후 호랑이와 인간의 공존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무렵이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민본주의를 천명했다. 민본주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농본주의를 구체화하고 있는데, 농본주의는 백성들에게 농업을 장려해 생업의 터전을 마련해줌으로 써 완결된다고 성리학자들은 믿었다. 따라서 농지 개간을 위해서는 호랑이 등 맹수 포획은 당연시됐다.

이에 따라 조선의 국왕들은 백성의 생명을 보호하고 굶주림을 막기 위해 호랑이를 잡고, 호랑이의 서식지를 농경지로 개간하는 포호정책을 실시했다.

당시 이 같은 민본주의 가치관은 다양한 정치·사회적 현상에도 적용됐다. ‘경국대전’에 호랑이는 ‘악수(惡獸)’로 규정돼 성종과 중종 대에 ‘악수’로 표현하는 사례가 현저히 증가했으며, 중종 때는 ‘백성을 위해 해를 없앤다는 의미의 ‘위민제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올 만큼 호랑이 포획이 성행했다.

조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호랑이를 잡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 포상과 호피 진상 제도도 마련했다. 당시 많은 젊은이가 출세를 위해 호랑이 포획에 나서기도 했으며, 호랑이를 잡아 출세한 이에 대한 기록도 있다. 호피 진상은 관리들의 출세에도 영향을 끼쳤다. 관찰사와 절도사는 왕에게 포획한 호랑이 가죽을 진상했으며, 많은 호랑이를 잡은 수령은 승진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 같은 호랑이 몰아내기의 결과로 한반도 대부분 지역에서 서식하던 호랑이의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했으며 18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호랑이에서 늑대로 대체되는 양상이 전개됐다는 것이다.

엔도 기미호 일본 야조회(野鳥會) 명예회장은 ‘한반도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라는 논문에서 “일제 때 조선총독부는 개발을 명목으로 호랑이를 방해되는 동물로 치부해 경찰과 헌병들이 수천명의 주민을 동원해 호랑이를 사냥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당시 총독부 자료에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호랑이 97마리, 표범 624마리가 포획됐다고 적고 있다. 또 당시 수렵하던 사람은 대다수가 일본인이었으며, 수렵을 허가받은 조선인 수는 한일합병 후 10년 동안 일본인의 10분 1에 미치지 못했다.

엔도 회장은 “한국의 호랑이를 조사해보던 중 (포호정책에 관한) 일제의 만행을 알게 돼 일본인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1922년 경주 대덕산에 발견돼 사살된 호랑이. 이 후 한반도 어디에서도 호랑이는 발견되지 않아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로 여겨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한국 호랑이 전문가인 그에 따르면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는 1922년 경주 대덕산에 포획됐다. 산기슭에 살던 주민 김유근씨(당시 26세)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가다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고 달아나 당시 경찰과 수백명의 몰이꾼들이 호랑이를 몰아넣고 사살했다. ‘대덕산 호랑이‘ 이후에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향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이란 논문에서 러시아에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아무르 호랑이 보전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촉구했다. 이 교수는 “남한에서 호랑이가 살아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현재 극동 러시아 지역에서는 400∼500마리의 아무르 호랑이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북한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서 연해주 지역에서도 10여마리의 호랑이가 살고 있다. 따라서 이들 중 일부는 중국 훈춘 지역에 출몰하고 이들은 함경북도와 양강도 산악지역에 출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개체수 보전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한반도에서도 언젠가는 호랑이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호랑이들이 밀렵과 러시아의 산업화로 서식지가 줄면서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 만큼 세계야생동물기금협회(WWF)등과 러시아의 야생동물 보존 관련단체들이 벌이는 아무르 호랑이 보호와 보존을 위한 활동에 우리 정부는 물론 민간 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 교수는 “호랑이에게는 국경이 없는 만큼 이들 호랑이가 장래 백두산 지역 호랑이 개체군을 회복할 마지막 희망이자 씨앗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한국의 아무르 호랑이 및 아무르 표범 보존단체의 활동과 홈페이지(www.amurleopard.kr 또는 www.amurtiger.org) 소개도 덧붙였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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