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즈음이면 일본이 과거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올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13년 만에 ‘반성’을 표명하긴 했으나 전쟁에 대한 책임,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의 발언은 없었다. 또 주요 정치인들은 1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거르지 않고 있다.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우리 정서대로라면 일본이 매년 광복절마다 ‘통절하게’ 사죄해야 마땅하다. 조선인을 끌어가 생체실험을 하고,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며 자국민의 불만을 재일조선인에게 돌리는 등 일제가 자행한 끔찍한 기억들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행태는 독일과 종종 비교된다. 일각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은 통절한 반성과 사과로 모범을 보이지 않았냐고 주장한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1970년 폴란드 유대인 게토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진은 독일의 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독일이 나치에 부역한 과거를 사과하게 된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나치 과거사 청산은 일정 부분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2차 대전 종전 후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되면서, 서독은 소련의 위협 속에 서방 진영에 편입해야만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과거사 청산이 절실히 필요했다. 브란트 총리 시절에 이르면 동유럽 공산권 국가와의 관계 정상화 필요성이 작동했다.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그는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외교 관계를 복구함으로써 소련의 값싼 천연가스를 얻었고, 새로운 수출 대상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시도는 동독과 신뢰를 구축하는 주춧돌이 됐다. 후일 동·서독 통일도 나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면 주변국의 협조를 얻지 못해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역시 상대적으로 외교적 필요성이 떨어지는 과거 아프리카 피식민지 국가를 향한 사죄, 반성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나미비아를 지배했던 독일 제국은 1904∼1907년 정착민들이 착취에 맞서 봉기하자 무력으로 진압해 무려 7만명가량을 살해했다. 독일은 오래도록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다가 2021년에야 인정했다. 그러면서 나미비아 개발 자금 명목으로 30년간 11억유로(약 1조6000억원)를 ‘보상’ 차원에서 내놓겠다고 제안했다. 나미비아 정부는 이 자금이 집단학살 피해에 대한 ‘배상’금이어야 한다며 자금 지원을 거부했다. 제공하겠다는 자금의 명목이 합법적 행위로 인한 손실에 대한 보상이냐, 불법적 또는 위법 행위로 인한 손실에 대한 배상이냐를 두고 벌어진 갈등이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일본이 사죄할 ‘필요’를 느끼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 필요를 만드는 데 한국의 국력이 중요하다. 잘못한 것이 있으니 반성하라는 것인데 필요 운운하는 게 가당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보았듯 국제질서에서 ‘힘의 논리’는 종종 제1원칙으로 작동한다. 약자에게 사과할 강자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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