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 쏟아진 정치적 비난
말러의 삶은 비극에 가깝지만
고난 후의 평화, 교향곡에 담겨
‘천국이 있다면, 그곳의 음악은 어떤 소리일까.’ 말러의 교향곡 제4번은 이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내놓는다. 마지막 악장에서 소프라노의 순수한 목소리가 천상의 삶을 노래한다. 고통이 사라지고 음악과 평화만이 가득한 세계. ‘여기선 누구나 걱정 없이 살아간다’, ‘성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고 우리는 웃으며 잔치를 즐긴다’. 언뜻 어린아이의 동화 같지만, 그 안에는 세속의 모든 무게를 내려놓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가벼움이 있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천국이 있다면 그곳의 음악은 이런 소리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어 다시 이 음악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서 다른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 완벽하고 평온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오래 머문 곳은 정작 따로 있었다. 바로 그 천상의 노래가 울리기 직전까지의 음악이었다. 그 앞의 세 악장은 결코 순탄하지 않은 길이었다. 밝음 속에도 불안이 스며 있었고 평화로움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왔다. 그 여정은 웃음과 눈물, 안식과 갈등이 얽힌 삶 그 자체였다.

말러는 ‘교향곡이란 세상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음악은 추상적인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감정, 삶 전체를 담아내는 수단이었다. 교향곡 제4번도 그렇다. 음악은 썰매 방울 소리로 그 여정이 시작된다. 맑게 울리는 종과 목관의 부드러운 선율은 마치 눈 덮인 마을을 달리던 말러의 어린 시절을 불러내는 듯하다. 그는 보헤미아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며 겨울마다 들리던 썰매 방울 소리를 마음 깊이 간직했다. 음악은 처음엔 평화롭고 목가적인 장면을 그리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벌써 묘한 그림자가 스며 있다. 웃음처럼 들리는 리듬이 어느 순간 살짝 비틀리고 따뜻한 선율 뒤편에서 알 수 없는 불협화음이 스쳐 간다.
실제로 말러의 인생은 유난히도 비극과 가까웠다. 15살 무렵, 그는 동생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었다. 한창 지휘자로 명성을 얻던 시기에도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감독으로 재직할 땐 정치적 압박과 비난에 시달렸고 1907년에는 사랑하던 딸 마리아가 성홍열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말러는 심장병 진단까지 받으며 최악의 해를 보냈다. 평생토록 사랑한 음악엔 늘 상실과 불안, 죽음을 의식하는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이런 삶의 무게가 교향곡 4번에 담겼다. 그러니까 4악장이 등장하기 전, 천국에 도달하기 직전까지의 음악에 해당된다. 거기에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의 무게를 견디고 끊임없이 이겨내려는 강인한 의지가 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과 슬픔을 포용하면서도, 그 아픔에 눌리지 않고 다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녹아 있는 것이다. 말러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을 아름다운 선율과 복잡한 감정의 조화로 승화시켰다.
이처럼 말러의 음악은 우리에게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삶의 불완전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숭고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그가 그려내는 세계는 완벽한 평화가 깃든 천국의 정경보다, 그곳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에 더 많은 빛을 비춘다. 그래서 말러의 음악은 천국을 직접 묘사하는 장면보다, 그 문을 두드리기 직전의 여정이 훨씬 더 아름답고도 숭고하게 다가온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사랑했던 건 이 마지막 악장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웃음 뒤의 불안, 완전하지 않아서 더 소중한 시간들. 천국의 완벽함보다 그 완벽함을 향해 나아가는 불완전한 삶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상실과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천국은 공허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믿게 된다. 천국보다 더 아름다운 건,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완벽하지 않기에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말러 교향곡 4번은 그 믿음을 내 안에 강렬하게 심어준 음악이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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