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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07 10:04:29 수정 : 2010-05-07 1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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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계단식 논을 보수하는 노인, 젊은 사람들은 이미 계단식 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바나우에 시의 계단식 논들은 도시의 급속한 팽창으로 축소되고 있으며, 관광객들이 찾는 목공예품과 해외 목재 수출을 위해서 삼림 채벌이 증가되어 계단식 논의 물 공급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고 관광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정작 관광의 대상인 계단식 논을 지키는 농부들에까지 충분히 돌아가고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계단식 논의 최대 30%가 버려져 훼손되고 있다고 추정해, 그 결과 계단식 논은 2001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추가되었다.
- 보고서 <관광이 아태지역 문화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네스코 방콕 아태지역 사무소 지음 중 일부 발췌

관광객들이 이푸가오 지역을 기억하는 몇 가지 단어가 있다. ‘세게 8대 불가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라이스테라스(Rice Terrace : 계단식 논)’, 그리고 ‘바나우에'. 이 지역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바나우에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균형잡힌 계단식 논이 위치한 곳으로 필리핀에서 가장 큰 화폐단위인 ’1천페소(약 26,000원)‘ 뒷면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이 지역은 이푸가오 지역을 관광할 때, 교통의 요지로 불린다. 나가카단, 마요야요, 하파오, 바타드, 다른 지역에 지정되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넘나드는 교통의 시작점이며 지역 관광 관련 관청 및 각종 편의시설이 모두 이 조그마한 시내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 필리핀 한인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어학연수생들이 주기적으로 필리핀을 들락거리면서 이 지역을 찾는 한인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바나우에 군청 옆에서 우리는 조그마한 태권도 도장까지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최근 바나우에는 실질적으로 논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지역 NGO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SITMo, 시트모)’과 이푸가오 주정부 등이 수차례 논의를 통해서 이런 결론이 도출되었는데,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로 이 지역에서 대두되고 있다. 기원전 3천년 전, 살 곳을 찾아헤매다가 정착한 이푸가오 족이 해발 2천미터를 넘나드는 지역을 맨 손으로 개간하여 계단식 논 농사를 짓게되고 그것을 뿌리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바나우에 지역은 이 3천년의 정체성이 관광화와 이촌향도 현상 등으로 무너져버린 탓 이었다.

이 지역 쌀은 그 질이 좋아 필리핀 수도 메트로마닐라에서는 고가로 거래가 되지만, 바나우에 사람들은 이제 외국에서 쌀을 수입해서 먹는 처지이고, 이푸가오 젊은이들은 제사장이자 교육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뭄바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결국 모든 논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배수시설이 파괴된지는 오래였다. 부족의 전통과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지던 이 지역의 사람사는 냄새는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필리핀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있는 헌드레드 아일랜드, 무부별한 개발과 관광화로 파괴된 뒤 오랜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우회적인 답을 이번 공정여행을 통해 참가자들은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를 다닐 나이에 이 지역 교통 수단인 트라이시클을 운전하는 아이도, 농사를 잘 짓고 살다가 정리하고 내려와서 보따리 장수를 하는 아저씨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굽신거리며 구걸하는 전통의상 입은 할머니도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를 ‘돈’이라고 답하고 있었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수많은 트라이시클, 그리고 트라이시클을 운전하는 중학생 나이의 젊은 운전수들.
미국 식민지 때, 그리고 급격한 관광화와 이촌향도 현상 등으로 이푸가오 지역은 급격한 서구식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존의 부족 내의 우리식 두레나 품앗이 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뭄바키가 집을 찾아다니며 교육을 담당했던 부분은 돈을 벌어서 아이들 학교를 보내야 하는 것으로, 논 농사를 지으며 주기적으로 있는 잔치 때 여러 영양분을 섭취했던 전통방식에서 벗어나 돈이 있는 사람은 먹고 없는 사람은 못 먹는 것으로 사회는 변했다. 그리고 지금 바나우에에 서 있는 수많은 교통수단들은 관광객 한 명이 출현할 때마다 그들을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돈’이라는 가치가 이 사회를 지배하기 이전에, 이들은 이 자연환경에 맞추어 질서가 존재했고 생활양식이 있었으며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오랜세월을 통해 익히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유네스코는 이 곳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명아래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해 놓았지만 그 선택이 이 지역 보존을 위했던 것인지, 이 지역의 관광성을 부각시킨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야할 단계는 아닐까?

관광객도 유네스코도, 이들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필리핀의 수빅이나 헌드레드 아일랜드는 각광받는 관광지였으나 위와 같은 문제를 겪은 뒤 주변 환경이 파괴되었고 관광객들이 더이상 찾지 않으면서 원주민들은 도시 근교로 옮겨가 빈민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겪었다. 관광객의 행보가 중요한 것은 이런 극단적인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이푸가오 역시 그들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이런 고민을 안았던 공정여행 참가자들은 이 여행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을까?

※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공감만세)’은 '공정여행‘을 계속 고민하는 친구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관심있으시면, 카페(http://cafe.naver.com/riceterrace)에 들러주세요!

고두환 casto84@gmail.com 트위터 http://twitter.com/casto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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