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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이익 챙기고 남북한 영향력 확대… ‘일석이조’ 노려

입력 : 2011-09-06 18:18:02 수정 : 2011-09-06 18: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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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수송보다 3분의 1이상 비용 절약…美·中제치고 ‘동북아 주도권’도 넘봐
南 안정적 확보·北 통과료 수입 ‘윈윈’
일각 “러 자원무기화 남북 휘둘릴수도”
지난달 24일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국내외 언론은 ‘은둔의 제왕’ 김 위원장의 행보에 초점을 맞췄다. 메드베데프보다는 김정일, 러시아보다는 북한이 주요 관심사였다. 급물살을 타는 남·북·러 가스관 사업도 김 위원장이 주인공인 것처럼 그려졌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언제나 더 크고 힘센 나라 중심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을 한반도 문제로 보기보다는 러시아의 국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한반도 가스관 ‘체스판’에 남북한이 모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러시아의 가스관 노림수

남·북·러 가스관 사업은 10여년 전부터 얘기돼 왔다. 그동안 잠잠했던 이 사업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야망과 관련 있다. 우선 러시아가 한반도 가스관 사업을 추진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경제적 이익 추구에 있다. 가스관을 통한 가스 수출은 해상 수송의 경우보다 비용이 3분의 1 이상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남한에 가스를 공급하면 후쿠시마 지진 이후 원전 혐오감이 커진 일본 시장까지 노릴 수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 가스관 사업을 통해 그동안 난항을 거듭해온 중국과의 가스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분석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러시아가 가스관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싸게 공급받는 남한과 가스와 가스통과료를 모두 챙기게 되는 북한이 갈등을 자제하게 되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동북아 주도권까지 넘볼 수도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러시아가 새로운 한반도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아시아 전문가인 팀 빌 박사는 “러시아가 경제적·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가스관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이는 미국에 저주와 같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러시아 대선과도 관련이 있다. 재선을 노리는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3선에 도전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대결구도로 압축되는 상황에서 ‘옛 소련의 부활’을 쟁점화한 푸틴에 맞서 메드베데프가 한반도 가스관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러시아 전문가인 고재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푸틴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메드베데프가 임기 말 치적으로 한반도 가스관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건설사업 논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을 보이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의 가스회사가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육상 가스관을 시공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반도, 러시아 영향력에 휘둘리나

한반도 가스관은 일견 남·북·러 모두에게 ‘윈윈 게임’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안보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 온라인 정치잡지 카운터펀치는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체스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러시아의 에너지·자원 무기화 움직임이다. 러시아는 수년 전부터 가스 등 자원을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러시아 가스관이 통과하는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 등 주변국은 최근 거의 매년 겨울마다 러시아와 가스통과료, 공급량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공급받는 유럽 국가의 난방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이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높일 경우 러시아의 한반도 영향력은 급속히 커질 수밖에 없다. 고 교수는 “북한의 경우 옛 소련 무기체제가 대부분인데 군수조달, 첨단무기 확보 등을 위해서라도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에너지 자원을 무기화하는 러시아의 전략에 남북한이 휘둘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남북 관계에서도 위험은 있다. 북한이 가스관을 볼모로 남한을 협박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예상되는 연간 가스통과료 수입 1억달러보다는 남한의 에너지 보급로를 쥐고 흔드는 게 더 큰 매력이 될 수 있다. .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나 북한이 가스관으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러 가스관을 통한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은 대단히 매력적인 선택 사항”이라며 “가스관 위험 부담보다 이익이 훨씬 더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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