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트레스와 과로로 몸을 혹사한 직장인 김모(33)씨는 지난달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다 변기에 고인 핏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심한 변비를 앓을 때 화장지에 조금씩 핏방울이 묻어 나온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변기 한 가득 새빨간 핏물이 고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장암이나 직장암 등 무시무시한 질병의 이름이 머리를 스쳐 갔다. 김씨의 병명은 무엇이었을까.
#2. 치질 초기 환자인 직장인 이모(38)씨는 용변 뒤 항문을 세척하는 기구인 ‘비데’(bidet) 사용 시 늘 불안하다. 치질에 좌욕이 좋다는 말에 집에서는 물론 사무실에서도 비데가 설치된 곳에서만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언제부턴가 비데 수압을 가장 낮게 조절해도 통증과 출혈이 동반됐다. 병원을 찾은 이씨는 치질이 악화할 수 있는 만큼 비데 사용을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3. 주부 박모(43)씨는 셋째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치질이 생겼다. 처음엔 변을 볼 때 피가 섞여 나왔지만 통증이 없는 데다 진료받기가 부끄러워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사용했다. 약을 쓸 때마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져 걸을 때도 앉을 때도 통증을 느낀다.
이 같은 사례처럼 용변을 볼 때 출혈이 발생하면 보통 우리가 ‘치질’이라고 부르는 ‘치핵’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대장암의 징후일 수도 있다. 대변을 볼 때만 피가 나고 금방 멈춘다며 항문 출혈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대장과 직접 연결된 항문은 장 건강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에 전문의들은 평소 항문 건강만 잘 체크해도 대장 질환을 방치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 항문 출혈, 대수롭지 않게 넘겨선 안돼
특히 항문 주위에는 신경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런 신경이 자극을 받으면 항문소양증이 유발된다. 가려움을 참지 못해 항문을 과도하게 긁게 되면 2차적인 피부 손상도 일어난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4배 정도 많이 발생하며 40∼50대에 흔하다. 여름철과 밤에 증상이 더 심해지고, 심한 경우에는 가려움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항문소양증은 다른 질환의 2차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속발성 소양증과 다른 질환과 연계되지 않은 특발성 소양증으로 나뉘는데 특발성 소양증이 대부분이다. 특발성 소양증은 대개 ▲술이 ▲커피 ▲스트레스 ▲과도한 항문 청결 습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반대로 청결하지 못한 항문도 소양증을 유발한다.
대변에는 리소자임이라는 강한 알칼리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배변 후 제대로 뒤처리를 하지 않으면 이 물질이 항문을 자극한다. 비누 역시 알칼리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소양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속발성 소양증은 치루와 치열·치핵과 같은 항문질환이 원인으로, 이런 질환이 있으면 항문 내 분비물이 항문 주위에 묻어 자극과 염증을 일으킨다.
◆ 치질 심해지면 항문 조직 손으로 밀어 넣어야
치질은 항문 내에 있는 정상적인 조직이 밖으로 빠져 나와 있는 상태를 말하며, 치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치핵은 변비 등으로 인해 변기에 오래 앉아 무리하게 힘을 주는 잘못된 배변 습관이 주요 원인이다. 배변 때 통증이나 출혈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 빠진 항문 조직을 손으로 밀어 넣어야 할 정도가 된다.
땀이나 잘못된 음식 섭취로 인해 치질 증상이 악화되기 쉽다. 밖으로 빠져 나온 항문 조직(치핵)에서 새어 나온 분비물과 땀이 섞여 양이 많아지고 악취와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 시원한 맥주, 치질 환자에게 '毒'
보통 갈증을 잊기 위해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치질 환자에게 독약과 같다. 맥주를 많이 마시면 혈관이 확장되면서 혈관 압력이 높아져 치핵뿐 아니라 항문 주변조직도 함께 부어 오르고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지나치게 차가운 음식, 상한 음식물 섭취로 인한 설사 역시 치질을 악화시킨다.
항문 농양은 항문 주변 조직에 염증이 생겨 곪은 상태로, 심하면 안쪽에서 농양이 터져 고름이 나오기도 한다. 이 상태가 만성화되면 항문 안쪽과 바깥쪽에 고름터널(누관)이 생기는 치루로 발전한다. 치루를 오래 놔두면 고름이 주위 조직으로 퍼지게 되어 단순 치루였던 것이 누관이 여러 개 생기는 복잡형 치루로 발전해 치료가 어려워지므로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루의 경우 10년 이상 방치할 경우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여름철에는 세균 증식이 왕성해져 치루 증상이 더 심해진다.
◆ 항문 주변 청결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
항문소양증 치료를 위해서는 항문 주위를 청결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꽉 끼고 땀 흡수가 잘 안 되는 바지는 피하고, 헐렁한 옷을 입으면 항문 주위 혈액순환과 통풍이 잘돼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치질도 좌욕을 하면 항문이 청결해지고 항문 주변의 혈액순환이 잘돼 증상이 완화된다.
한편, 코웨이는 서울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와 공동연구를 통해 좌욕 기능을 탑재한 '클리닉비데'를 15일 선보였다. 이 제품은 국내 최초로 '좌욕 전용 수류(물줄기)'를 적용해 비데를 쓰면서 좌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좌욕 수류는 두 개의 물줄기가 한 점으로 분사돼 수류의 힘이 상쇄되고, 이를 통해 항문 내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좌욕 수류를 연구한 박규주 서울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코웨이와 공동으로 좌욕 수류에 대한 임상 시험을 실시했으며 좌욕 수류를 이용할 경우 휴식기 항문 내압이 일반 좌욕기를 사용할 때와 유사하게 감소한다는 결과를 얻었다"며 "좌욕기와 유사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좌욕기 대용으로 사용할 경우 항문질환 예방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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