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경찰 보고서가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진술이 검찰 수사기록에 등장하게 된 전말은 이렇다. 2012년 3월, 디도스 특검은 2011년 10월26일 재보궐 선거일에 벌어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자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여기서 김 전 수석과 전직 행정관 A씨가 경찰 수사상황을 용의자 측에 누설한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다. 특검은 A씨 주거지를 압수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 등이 청와대에 보고했던 문서 715건이 발견됐다.
특검은 2012년 4월 A씨를 세 차례 불러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와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를 조사했다. A씨는 “국정원은 선거 동향·대북관계·국가적 사안을, 경찰은 치안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개별 의원 동향·지역 관심사 등을 보고한다”고 진술했다. 주목되는 부분은 “(정무수석비서관실은) 자료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고 각 비서관실, 국정원, 경찰에서 보고되는 자료 및 필요로 하는 자료를 수집해 전달하는 기관”, “정무수석은 정보 가치를 판단해 ‘청와대’에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한다”고 말한 대목이다. 여기서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특검은 특검 수사범위인 디도스 사건에 신문을 집중,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은 채 서울중앙지검에 내사 사건으로 이첩했다.
A씨 진술 중엔 정무수석실이 단순히 보고를 받는 것을 넘어 지시를 했다는 점도 시사한 부분이 있다. A씨가 “국정원과 경찰 보고자료는 오전에 (연풍문에서) 서명을 하고 갖고 온다. 필요한 경우 해당 부서에 추가 자료를 요청했다”, “(나의 업무는) 정무수석 지시사항을 확인해서 보고하는 일이었다”고 진술한 부분 등이다.
서울중앙지검은 A씨를 같은 해 8월 소환했다. 사건을 맡은 박모 검사는 A씨에 대해 청와대와 정보기관 간의 문서 보고 전반에 대해 캐물었다. 검사는 “정무수석실에 국정원, 경찰청이 이런 자료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냐”, “정치권의 동향이나 10·26 지방선거 예측을 정무수석이 관심을 가질 일이냐”고 물었다. 이에 A씨는 “정무수석은 정치권과 청와대의 소통통로다. (정치권 동향을) 담당할 분은 정무수석비서관밖에 없다”고 답했다.
김 전 수석이 선별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얘기다. 박 검사는 이후 A씨를 피의자로 신분을 바꿔 앞서와 비슷한 내용으로 질문을 반복하며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때는 ‘대통령에게 보고하는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조서 분량 역시 앞서의 피내사자 진술조서보다 A4용지 2쪽 분량이 줄어든 11쪽이었다.
검찰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18대 대선이 치러지기 넉달 전 ‘SNS 장악’ 보고서 등 대량의 문서를 확보하고도 아무런 수사 개시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사건 자체가 약식기소, 약식명령으로 종결된 탓이다.
우선 정식 보고 계통도 밟지 않은 ‘비선 보고서’, 각종 불법 정황을 담은 보고서의 종착지가 현직 대통령인 점을 시사하는 수사 결과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에선 통상 이런 경우 수사 검사가 독자적으로 결정하기는 어렵고, 조직 수뇌부가 청와대와 교감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채동욱 검찰총장 체제에서 국정원에 대한 수사를 강하게 추진했는데도 정작 특별수사팀은 이런 수사기록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향후 밝혀져야 할 의혹은 많다. 우선 세계일보가 입수한 13건 외에 나머지 702건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다. 13건만 해도 여론 왜곡·조작, 야권 사찰, 청부 수사 등 온갖 종류의 불법 정황이 수두룩한 탓이다. 700여건은 얼마나 많은 불법·탈법 증거를 담은 채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보관돼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또 검찰이 지금껏 침묵을 지킨 이유 역시 규명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혹여 일부 검사의 ‘정치적 딜’ 혹은 ‘의도적 은폐’가 드러날 경우 검찰에 대한 개혁 요구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국정원 개혁 발전위원회가 검찰에 관련 서류를 요청해 국정원 차원에서 관련 의혹을 일부나마 풀어낼지도 주목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청와대와 정보기관, 사정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권력형 국기문란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사건의 전모는 강제수사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조현일·박현준·김민순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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