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타워의 한 카페.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2명의 여성이 다가오자 테이블에 먼저 앉아있던 2명의 남성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자 이내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대규모 집단미팅에 참가한 남녀 직장인들이 입장 티켓을 받으려 줄을 서고 있다. |
“흠흠. 그럼 슬슬…”
한 번 자리를 하면 30분 정도 대화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참가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참가자들의 얼굴엔 아쉬운 기색이 스치면서도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였다. 물론 헤어지기 전 연락처를 묻는 건 필수다.
행사 참가 목적은 모두 제각각. 로맨틱한 연말을 꿈꾸며 연인을 찾으려는 이도 있었지만, “친구와 ‘맛집탐방’을 위해 왔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행사에 참가한 직장인 김모(27·여)씨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최근 젊은 세대에서 200∼300명씩 참가하는 대규모 집단미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시나브로 ‘옆구리가 시린’ 계절이 다가오면서 연애와 결혼, 출산을 꿈꾸기 어려운 ‘3포 세대’에서 급속히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 데다 부담없는 만남을 추구하는 청년층의 인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28일 미팅에 참가한 300여명의 직장인들은 행사장 내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이성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
주선자가 있는 소개팅이나 결혼을 전제로 한 맞선과 달리 만남과 이별에 부담이 없다는 점이 참가자들에게 매력이다. 30대 직장인 참가자는 “‘기필코 애인을 만들겠다’고 참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형태의 만남은 일본에서 먼저 유행했다. 2000년대 초반 ‘마치콘(街コン·거리를 뜻하는 ‘마치’와 사교를 뜻하는 ‘Company’의 합성어)’이란 이름으로 등장했고 2010년 이후 지역상권 활성화와 청년층의 이성교제를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지원했다. 한 해 60만명의 젊은이들이 이런 행사에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인기를 모은 집단미팅 ‘마치콘’은 연간 60만명의 청년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에 착안해 국내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 5월 수원시는 시청의 미혼 직원들과 관내 공공기관 등 직장인 300여명이 참가한 집단미팅을 개최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일이 바빠 연애도 못하는 직원들이 워낙 많아 직원복지 차원에서 추진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고 전했다.
이같은 신풍속도의 배경엔 연애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젊은 세대의 감성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월 한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녀 3만8944명 중 연애·결혼·출산 중 ‘연애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남 52%·여 58%)이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청년들은 ‘비혼’을 선언하겠다는 것이지 연애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며 “‘반드시 배우자를 찾겠다’는 기성세대와 달리 자유로운 만남이나 인적 네트워크 형성이 목적인 경우가 많아진 점이 만남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배경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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