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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인 이모(29)씨는 요즘 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2년 동안 준비해 온 시험이지만, 밤낮으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집중력이 떨어진 것이다. 이씨는 “평소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는데, 요즘은 도서관도 더워서 집에서 하고 있다”며 “집에서도 종일 에어컨을 틀긴 어려워서 1시간마다 냉수마찰해가며 공부한다”고 말했다. 시험을 앞두고 이씨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무너진 신체리듬이다. 이씨는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치느라 체력관리가 안된다”며 “2년 동안 준비해 온 시험인데, 막판에 더위가 복병이 된 것 같다”고 호소했다.
연일 기승을 부리는 폭염으로 취업 준비생들이 시름하고 있다. 당장 국가고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들과 공시생들 사이에선 ‘더위를 이기는 것이 합격의 당락을 가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12일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국가공무원 7급 공채 필기시험과 세무사 2차 시험은 오는 18일 치러진다. 두 시험을 앞두고 서울에서는 지난달 16일부터 폭염이 지속됐다. 시험을 5일 앞둔 13일에도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6도로 예보됐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무더위 속에서 치러지는 시험에 대한 우려와 푸념이 나온다. 수험생 강모(32)씨는 “매년 8월에 세무사 2차 시험이 있는데 그때마다 더위가 최대의 적”이라며 “1년에 한번뿐인 시험인데 시험일자를 가을로 조정해야 하는것 아니냐”고 말했다. 수험생들이 모인 인터넷카페에는 시험장소의 냉방상태를 묻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영등포 A중학교와 용산 B고등학교는 건물이 낡아 에어컨이 약하다”며 “자칫 찜질방 같은 더위를 견디며 시험을 봐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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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의 한 패스트푸드 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공무원 준비생들. |
취업 준비생 등 20∼30대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무더위쉼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량진 학원가가 위치한 노량진1·2동 주변에는 무더위쉼터 23곳이 위치해 있지만, 대부분 경로당에 위치해 있어 공시생들의 발길이 뜸하다. 한 공시생은 “노량진에는 20∼30대 더위 취약계층이 많은데, 더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며 “공시생들이 쉽게 갈 수 있는 무더위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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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20∼39세의 온열질환자는 전체 온열질환자의 20%에 육박한다. 직업별로는 무직자와 학생의 온열질환자 비율이 25%에 달한다.
김원섭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는 올해와 같은 폭염이 드물어 ‘혹서기’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며 “취업 준비생 등 더위 취약계층을 위한 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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