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이 일단 봉합됐다. 윤 총장이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 지휘에서 완전히 배제되면서다. 추 장관은 장고 끝에 나온 윤 총장 반응을 보고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끝이 개운하지 않다.
대검찰청을 통한 윤 총장 입장 발표는 9일 추 장관이 제시한 데드라인(오전 10시)보다 1시간20여분 일찍 나왔다. 대검은 “채널A사건을 서울중앙지검이 자체적으로 수사하게 됐다”며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즉각적) 처분으로서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꼼꼼히 들여다보면 ‘추 장관 지시가 내키지 않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는 것처럼 읽힌다.
법무부와 검찰이 물밑에서 논의해 합의한 ‘독립적 수사본부 구성’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개되지 않은 법무부 내부 자료가 밖으로 새 나가면서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 모두가 조직 내 소통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 문재인 대통령이 당부한 ‘서로 협력’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윤 총장 반응은 표면상 추 장관 지시를 수용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지시를 내려 사건에서 완전히 배제하도록 해 놓고 왜 입장을 물어봤느냐”는 항의도 엿보인다.
윤 총장이 입장문 끝에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을 언급한 것이 뒤끝을 남긴다. 윤 총장은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사건 팀장으로 임명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를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법무부가 반대했고 윤 총장은 “상부 외압이 있다”고 폭로했다가 지방으로 좌천당했다.
추 장관은 법무부 입장을 통해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은 공정한 수사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의 국정원 사건 언급에 대해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 당시에 총장이 느꼈던 심정이 현재 이 사건 수사팀이 느끼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고 총장이 깨달았다면 수사의 독립과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답했다.
법무부와 대검의 ‘불통’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앞으로 언제든지 불씨가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월 법무부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추진하는 추 장관이 자기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윤 총장을 만나고 싶다고 대검에 제안했지만 둘 간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 사태 역시 법무부와 대검이 독립적 수사본부 구성을 놓고 뜻을 같이 했으나 결국 이뤄내지 못하면서 소통채널에 대한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다.
추 장관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배제한 수사팀을 구성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도 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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