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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동검도서 본 영화 ‘남아있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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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30 22:55:45 수정 : 2021-07-30 22: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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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英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
역사적 시선 비평적인 평가 필요

강화도는 마음이 허전할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곳이다. 옛날 대학생 시절에 신촌 로터리에 강화행 버스터미널이라고 있어 거기 가면 이 아늑한 서해 섬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러고도 강화도는 늘 전등사며, 동막해변이며, 함허동천으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오늘은 이 강화도에 딸린 작은 동검도로 간다. 거기 영화감독 하는 분이 차리신 ‘DRFA 365 예술극장’이라는 곳이 있어 도시에서도 멸종되기 직전인 예술영화들을 상영하곤 한다. 여기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원작의 ‘남아 있는 나날’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원작을 보기 전에 먼저 영화를 보아 두면 좋을 것 같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동검도로 가는 길은 코로나 팬데믹 덕분인지 한적하기만 하다. 유원지처럼 왔다 갔다 하던 자동차 행렬이 오늘은 줄을 길게 늘어서지 않았다. 다리 건너 강화 들판은 섬들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풀어 놓았다. 함허동천 쪽으로 가다 동검도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를 건너자 이제 자연정취를 찾아 세운 팬션 같은 집들과 아직도 남아 있는 오래된 가옥들이 나타난다.

여름꽃들은 빛깔이 강렬하다. 담장에 담쟁이넝쿨 올린 어느 아름다운 집 뜰에 꽃양귀비 빨간 꽃송이들이 바닷바람을 타고 살랑거리고 있다. 바로 건너 갯벌에는 갈대들이 저절로 자라나 있어 바람을 따라 물결을 이룬다. 오랜만에 보는 여유로운 풍경이다. 요즘 하루하루가 당일치기 같은 분주한 나날들이었다.

이 예술극장은 바로 그 갈대밭 펼쳐진 갯벌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온갖 꽃들 피어난 정원에서 커피 한잔 하며 기다리다 이 드물게 보는 극장의 객석 맨 뒤에 자리를 잡는다. 영화감독이 막이 열리기 전 피아노곡을 연주까지 해주는데 보통 솜씨가 아닌 것 같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2시간14분이나 하는, 아카데미 8개 부문 노미네이트의, 화려한 영상이 펼쳐진다.

앤서니 홉킨스는 스티븐스라는 충직한 집사장 역을, 엠마 톰슨은 켄턴이라는 하녀장 역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홉킨스는 ‘양들의 침묵’에서 일찍이 그 실력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오늘은 ‘달링턴 홀’이 딸린 오래된 성의 주인 달링턴 경의 집사장으로, 이 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와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치열한 외교전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인물로 나타난다.

그런데, 필자에게 나이 들어가는 스티븐스와 서른 살 남짓의 켄턴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의 감춤과 드러남 같은 이야기는 아예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해도 좋다. 두 사람은 모두 영국의 귀족제도를 떠받치는 전통과 권위와 위계를 지켜나가려는 사람들로서, 저 독일 학자 막스 베버가 말한 ‘직분의 논리’에 지극히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 안타깝게 이끌리지만, 특히 스티븐스는 이 오래된 성과 주인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사랑을 키워 결혼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켄턴은 결국 그의 곁을 떠난다.

그러나 이 사랑 이야기는 차라리 ‘남아 있는 나날’이라고 하는 ‘당의정’의 표면에 발라진 설탕 같은 것이라고 해도 좋았다. 과연 원작에 어릴 적 해양학자 부친을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는 그 일본계 영국 작가가 ‘양차 대전’ 앞뒤의 국제관계를 저렇게 해석, 처리하는 서술들이 나타나 있는지 아주 궁금했고, 그렇게 원작을 상상하면서 영화로 옮겨진 이야기를 ‘읽어가는’ 재미가 보통을 넘었다.

서울로 돌아와 서점에 가서 3판에 걸쳐 30쇄나 찍었다는 기록이 판권에 찍혀 있는 ‘남아 있는 나날’을 사서 읽어가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원작은 영화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교설적이었다. 작가는 집사장이라는 교묘한 인물 설정을 통해 영국과 다른 승전국들은 독일에 그렇게 가혹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 작가가 일본계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참 좋아하고 늘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요즘 노벨문학상은 여러 해에 걸쳐 석연치가 않다. 이 작품은 결코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며 더 엄격한 비평적 평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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