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특파원리포트] 한·미 민주주의 위협하는 팬덤 정치

관련이슈 특파원 리포트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1-08-15 23:33:13 수정 : 2021-08-15 23:33:1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문빠’ 등 열성파 막강 영향력 행사
트럼프 지지자도 바이든 인정 안 해
대선 주자들 사생결단식 무한경쟁
과도한 팬심 공동체 기반 무너뜨려

한국과 미국에서 팬덤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아이돌 스타의 사생팬처럼 대권 주자를 쫓아다니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를 지지하는 일부 인사들이 이 지사가 사퇴한 뒤 대선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문자폭탄을 투하했다. 미국에서는 팬덤정치의 끝판왕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지난 1월 6일 미 국회의사당을 폭력으로 점거하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켰다.

한국과 미국에서 대권 주자가 슈퍼 팬덤이 없으면 현재와 같은 사생결단식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지 모른다. 한국의 현대 정치를 풍미했던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3김씨는 지역주의를 등에 업고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들의 뒤를 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승리를 견인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는 한국 팬덤정치의 원조로 꼽힌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박정희시대의 향수에 젖은 시민들이 가담한 팬덤 덕을 톡톡히 봤다. 문재인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는 힘의 원천도 역시 ‘문파’로 불리는 열성지지 그룹이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팬덤정치는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와 맞물리면서 다가오는 한국 대선에서 꽃을 피울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대선 예비주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바람몰이식 대중 유세전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벌써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팬클럽 확장에 주력한다. 야권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비전이나 콘텐츠가 아니라 반려견 사랑, 애국을 자극하는 ‘짤’ 생산 경쟁을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총리는 ‘아내 사랑’ 자랑 대회를 한다.

팬덤은 유아독존의 배타성을 먹고 자란다. 팬덤에는 적과 아군이 있을 뿐이고 ‘우리’라는 공동체 인식이 없다. 영국의 프리미어 축구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패배하면 훌리건으로 돌변해 폭력사태를 종종 일으킨다. 스포츠팀과 자신을 일체화하고 팀의 패배를 자신의 패배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팀이 패배했을 때는 깨끗이 그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패배의 원인을 심판의 편파 판정, 상대 팀의 반칙으로 돌린다.

그런 스포츠팀의 일부 과격 팬들이 보인 것과 동일한 행태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난 대선 패배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부정선거 주장에 저학력 백인 중심의 ‘다이하드’ 지지자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다. 그 여파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한 표를 던졌던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바이든을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들이 집결한 백인우월주의 단체 ‘프라우드 보이스’ 등은 급기야 지난 1월 6일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쿠데타’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 당시에 “트럼프 문화 속에서 시민사회와 팬덤의 경계가 무너져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했다”고 했다.

팬덤의 배타성은 상대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하고, 팬덤정치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공존의 틀을 위협한다. 문제는 대선주자들이 이런 독소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슈퍼 팬덤 구축 경쟁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SNS가 여론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슈퍼 팬덤이 없는 주자는 여론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팬덤 경쟁에서 승리해 집권하면 오로지 지지층만을 겨냥한 편파정책을 밀어붙이기 일쑤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지금 그런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패배한 팀이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맨십을 발휘할 때 열성팬들도 패배를 인정한다. 대권 주자들도 이런 품격을 보이지 않으면 한순간에 민주주의 파괴자로 전락한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의 대권 주자들에게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대권 주자들의 슈퍼 팬 역시 자신의 과도한 팬심 표출이 공동체의 기반을 허물어뜨린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황우슬혜 '매력적인 미소'
  • 황우슬혜 '매력적인 미소'
  • 안유진 '아찔한 미모'
  • 르세라핌 카즈하 '러블리 볼하트'
  • 김민주 '순백의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