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피한 의료대란
“근무여건 개선 안 되면 더 못 버텨”
동료 떠나보내고 남은 의료진 호소
정부, 인력 충원 나섰지만 ‘역부족’
숙련된 인력 필요한데 일 못 맡겨
전문가 “수당 등 장기적 보상 필요”
“최근에도 동료 3명이 의료현장을 떠났습니다. 현재 극한의 상황에 대한 근무여건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저도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충남 천안의료원 코로나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김모(26)씨는 “체력적, 정식적으로 한계가 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뒤 2년 가까이 휴일 없는 3교대 근무가 이어지며 한계에 부딪힌 동료들은 의료현장을 하나둘 떠났다. 김씨는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일하며 정상적인 일상과 단절된 상황이 가장 힘든 점이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의료진이 감염돼서는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다 보니 퇴근을 해도 패닉(혼란)에 빠진 생활이 반복된다”며 “일상을 잃은 것이 가장 슬픈 현실”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2일 전국 180여개 병원의 간호사 등이 소속된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총파업을 철회했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여전히 ‘번 아웃’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58일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네 자릿수를 이어가며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의료 현장은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충북 충주의료원 소속 간호사 이모(40)씨는 “정부가 땜질식 처방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담는 실질적인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충주의료원의 간호 인력 정원은 193명이지만 실제는 20명이 부족한 173명이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이씨는 “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간호 인력으로 1년 반이 넘는 동안 근무를 하고 있다”며 “‘몸이 아프다’, ‘정신적으로 힘들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는 간호사가 의료폐기물 처리와 환자이송, 발열체크, 화장실 청소, 환자의 기저귀 관리까지 도맡아야 하는 구조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3월 보건의료노동자 4만3058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5.7%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노동여건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78.7%는 코로나19 확산 속 근무가 이어지며 “일상생활이 나빠졌다”고 했고 70.6%는 “코로나 블루(우울) 등 심리상태가 나빠졌다”고 답했다.
정부가 급히 의료 인력을 충원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는 최근 상황에는 역부족이다. 경기 남양주시의 한 종합병원 간호사는 “중증환자를 돌보려면 적어도 5년 이상 경험과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데 새로 급히 투입된 인력은 현장에서 일을 제대로 맡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은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숙련된 인력부족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부와 노조의 벼랑 끝 합의로 총파업은 멈췄지만 언제든 파업이 계속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여전하다. 경기도 의료원 관계자는 “노조파업이라는 고비를 일단 피했지만 도내 아주대의료원, 동국대 일산병원, 경기도 의료원 산하 6개 병원 등에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은 7000명에 달한다”며 “경기도의 경우 간호 인력의 조합원 비율이 높아 향후 노조와 갈등을 빚으면 병상이 비어도 인력 문제로 코로나19 신규 입원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는 전국적인 확진자 급증으로 진단검사와 치료, 접촉자 관리, 역학조사 등 모든 분야에 의료진 체력 소모가 극심한 상황에서 제도적 측면의 일자리 확보와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신우 경북대 교수(감염내과)는 “코로나19 현장의 의료진 번아웃이 심각한 상태인데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층이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감염내과를 기피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의 인력 보강이 쉽지 않은 만큼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위험수당과 생명수당 등 적절한 장기적인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기획재정부 등에서 관련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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