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금융권은 비상대응 돌입
“국내 정세 불안정성 심화 불가피”
자영업자 경기 악화·高물가 우려
“尹 지원강화 믿었는데 민생 외면”
3일 밤 ‘비상계엄’ 쇼크에도 대다수 기업은 4일 정상 근무체제를 이어가며 차분한 기조를 이어갔다. 다만 이면에서는 이날 새벽 계엄 해제까지 뜬눈으로 긴박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경영진을 소집해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정국 불안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짜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집중 지원을 약속받은 지 하루 만에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해 허망함을 표시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비상계엄이 경제계에 미칠 파장을 분석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SK그룹은 이날 오전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일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하는 주요 경영진 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사태 이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그룹 경영 활동에 미칠 영향 등을 논의했다.
LG도 이날 오전 계열사별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해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해외 고객 문의에 대한 대응 등을 논의했다. 국회의사당이 위치한 여의도에 사옥이 있는 LG는 이날 새벽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비상계엄 관련 여의도 상황이 좋지 않아 트윈(사옥) 동관, 서관 모두 재택근무를 권고한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각사 사장들은 비상경영상황에 준하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특히 환율 등 재무리스크를 집중 점검해 줄 것”을 주문했다. 또 “조선 등 생산 현장에서는 원칙과 규정 준수에 더욱 유념하여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줄 것”도 함께 당부했다. 현대차는 별도 회의 대신 경영층이 관련 상황을 보고받고 긴박한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선 경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경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금융시장 상황을 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특히 환율은 수출에 직결되는 만큼 변동 추이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당분간 국내 정세의 불안정성은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며 “수출부터 외국인 투자, 해외 사업까지 악영향을 피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대비태세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도 긴급회의를 열고 비상대응체제에 돌입했다. 이날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각사 회장 주재로 비상계엄 사태 관련 긴급회의를 열고 관련 리스크를 점검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인한 경기 악화를 경계하는 날 선 반응을 쏟아냈다.
이날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자영업자 지원이 다 끊기는 것 아니냐”, “이럴 거면 민생토론회는 왜 했냐”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충남 공주시에서 개최한 임기 후반 첫 민생토론회에서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수수료 인하 등 소상공인 지원대책 발표와 함께 정부의 내수진작 의지를 드러냈는데, 토론회 종료 약 30시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서울에서 15년째 요식업을 하고 있는 김모(49)씨는 “이번 사건으로 대통령이 민생은 안중에 없는 것이 명확해졌다”며 “지금도 너무 힘든데 계엄령 후폭풍 탓에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계엄령으로 경기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국가 신인도 저하에 따른 원화가치 하락, 해외 투자 감소 등으로 고물가와 경기침체의 악순환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또 “탄핵이든 개헌이든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한동안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지속할 것”이라며 “소상공인이나 기업들은 ‘각자도사(各自圖死)’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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