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명물 남포오석으로 석조각
10명에게 전통 방식 기능 전수
“다시 태어나도 석공의 길 걷고 싶어”

탁탁∼탁탁∼.
충남 보령시 웅천읍 차령산맥의 끝자락 잔미산 아래에 자리 잡은 충남 무형유산 제48호 보령석장 고석산(70) 석장의 작업장에서 시작된 망치 소리가 능선을 타고 산으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예로부터 보령 지역은 남포오석(藍浦烏石)으로 불리는 우수한 돌이 생산돼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을이었다.






남포오석은 특히 석질이 좋아 오랫동안 글씨를 보존할 수 있어 비석으로 많이 사용됐다. 조선시대 왕릉의 절반 정도가 남포오석으로 비석이 만들어졌고, 전직 대통령 묘비에도 사용됐다.
그러다 보니 보령 지역에는 전국 어느 곳보다 석공업이 발달하였고 우수한 석장들이 자리를 잡아 많은 석공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 웅천읍 출신인 고 석장은 뛰어난 기술을 가진 석장으로 충청남도에서 유일한 보령석장 무형유산으로 지정됐고, 불상 등 많은 우수한 석공예품을 제작해 왔다. 2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집안의 귀한 아들로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1968년 장항선에 몸을 싣고 서울 종암동 채석장에서 당시 석공예로 이름을 떨쳤던 정종섭 석장을 스승으로 모시며 석공예에 입문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고 석장은 빠른 시간에 기술을 익혔고 전국을 다니며 석공예 작업을 이어갔다. 강원 양양 휴휴암에 3년의 시간을 거쳐 완성해 모셔진 통돌 무게 300t, 높이 53자(16.5m)의 지혜관세음보살상은 가장 기억에 남고 자랑스러운 작품.
그는 불교미술 전람회 조각 부문 우수상,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선정, 국가유산수리기능사 지정 등의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전통 기법에 의한 석공예 기능 전수에 노력하고 있다. 나이 마흔이 되면서 보령의 남포오석이 좋고 그리워 본격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제작하는 석조각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남포오석 매장량은 한계가 있어요. 소중한 남포오석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후대에 영원히 남을 작품으로 탄생해야 되는데, 현실에서는 비석이나 건설 자재로 주로 사용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현재 보령석장 이수자 10명이 고 석장에게 전통 방식의 석공예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보령 지역에 단과대학이라도 조각 예술대가 생겨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석공예를 전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다시 태어나도 석공의 길을 걷고 싶다는 고 석장이 작업복에 묻은 하얀 돌가루를 무심하게 손으로 털어내며 그의 자랑인 남포오석이 빼곡하게 쌓여 있는 작업장으로 다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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