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산불로 큰 피해… 곳곳 불탄 흔적
산비탈 따라 직접 땅 파고… 묘목 심고…
생명의숲 후원자·시민 30여명 ‘구슬땀’
“산불, 조금만 주의하면 막을 수 있어”
“묘목 크게 자라 피해 복구 도움 기대”
식목일인 지난 5일 오후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봉화대산(해발 185.8m) 정상에 시민 30여명이 모였다. 나무심기로 희망을 보태고자 서울에서 온 생명의숲 후원자와 일반 시민들이다. 사람과 숲의 공존을 목표로 하는 생명의숲은 숲을 가꾸고 보전하는 민간 환경단체다. 같은 날 오전에는 강원 지역 주민 등이 이곳에서 나무를 심었다.
봉화대산은 2022년 3월 동해안 산불로 큰 피해를 본 곳이다. 산불 3년여가 지났어도 흔적은 여전했다. 밑동이 검게 탄 나무는 참혹했던 당시를 떠올리게 했고, 울창한 산림을 이루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을 암시했다. 지금은 눈앞에 펼쳐진 망상해변도 원래는 나무들에 가려져 정상에서 보이지 않았었다니 산불에 얼마나 많은 나무가 탔을지 생각하게 했다.

◆땅 파고 묘목 심고… ‘튼튼하게 자라라’
참가자들은 산비탈을 따라 바닥에 꽂힌 표시봉 옆에 길이 1m가량의 산벚나무 2년생 묘목을 심었다. 뿌리가 충분히 묻힐 만큼 곡괭이로 땅을 파고, 전지가위로 잔뿌리를 정리한 묘목을 그 위에 수직으로 세웠다.
파낸 흙 중 상대적으로 젖은 흙으로 먼저 뿌리를 덮고 마른 흙을 나중에 올린다. 낙엽 등이 뿌리 주변에 섞이지 않게 주의한다. 묘목 주변의 흙은 발로 꾹꾹 밟아 단단히 다지고 표시봉과 묘목을 노끈 등으로 묶는다.
표시봉은 묘목이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하는 역할이지만 주변 수풀을 베어낼 때 묘목 위치를 알려 주의를 요구하는 의미도 있다.
기자도 묘목을 심었다. 곡괭이로 땅을 파고 묘목을 구덩이에 넣었다. 흙 아래 숨어 있던 다른 나무의 뿌리나 돌 등으로 이따금 곡괭이질이 말을 듣지 않았고, 날이 돌에 부딪힐 때는 ‘꽹’ 하는 소리와 함께 곡괭이를 타고 올라온 진동이 팔을 따라 퍼져 몸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이날 기자는 묘목 10여그루를 심었는데 내후년쯤 이곳에 다시 방문했을 때의 풍경은 어떨지 상상하게 했다.
“간식 드시고 하세요, 간식!”
참가자들은 흐르는 땀을 닦고 불어오는 산바람에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앞서 작업에 열중하느라 옷에 묻은 흙도 털어내지 못한 이들에게서는 나무심기를 위해 뭉쳤다는 일종의 동질감까지도 느껴졌다. 오후 2시쯤 시작한 묘목 300여그루 심기는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과 함께 1시간여 만에 종료됐다. 오전의 묘목 심기까지 합하면 총 1200그루가 0.4㏊ 산지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나무심기는 산벚나무와 소나무의 혼합림 방식이라고 생명의숲 관계자는 설명했다. 수분 함량이 높아 상대적으로 산불 저항이 강한 활엽수 산벚나무 지대를 침엽수 소나무 지대 사이에 배치한다. 이로써 봉화대산 일대 총 7.6㏊에는 3년에 걸쳐 소나무와 산벚나무 묘목 총 2만5000그루로 구성된 산림지대가 탄생했다.
봉화대산 나무심기는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기금으로 진행된다. 2023년 1.4㏊ 소나무 심기로 시작해 2027년까지 이어진다. 그 후에는 동부지방산림청 삼척국유림관리소가 이곳을 관리한다.

◆“하지 말 것을 하지 말아야”…뼈 있는 한마디
다양한 이유로 나무심기에 힘을 보탠 만큼 참가자들의 소감도 가지각색이다. 생명의숲 후원자 A(80)씨는 “어려서부터 숲을 좋아했다”며 더 늦기 전에 피해지 복구에 힘을 보태고자 참가했다고 밝혔다. 함께 온 딸은 “뜻깊은 행사에 참여하게 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산불 예방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강조했다. 3년 전 산불을 경험한 강릉 주민 구태우(38)씨는 최근 경북·경남지역 산불에 대해 “한 번 산불을 겪어보니 그 피해에 더욱 공감됐다”며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고, 조금이라도 일찍 불이 꺼지도록 비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조금만 주의하면 막을 수 있는 게 산불”이라며 “오늘 우리가 심은 묘목이 크게 자라 피해 복구에 큰 힘이 될 거라고 아이들에게도 말했다”고 덧붙였다.

구씨의 딸 하연(12)양은 “자연환경에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산에서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잘 지키도록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어른들을 향한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낮 기온이 11도를 기록한 동해시 일대에서는 오후 8시까지 비가 예보됐다. 오늘의 묘목이 튼튼한 나무로 자라 미래의 푸르른 강산을 이룰 거라는 기대를 품고 참가자들은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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