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후보 추천 ‘3·3·3’ 체제
민심 반영하라는 취지와 달리
정국 상황 따라 휘청이는 구조
헌재 구성 제도적 보완 목소리
독일선 후임자 ‘비상추천’ 가능
오스트리아 등 ‘예비재판관’ 둬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더욱 극대화됐다. 헌재 앞은 변론이 이어지는 동안 탄핵 찬성 집단과 반대 집단의 집단 성토장이었다. 일부 헌법재판관들은 출퇴근길에서부터 극성 지지자들에게 시달렸다. 양심과 헌법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할 재판관들을 향한 물리적 위협이 현실화된 것이다. 특히 이번 탄핵심판의 경우 정치권 이해에 따라 재판관이 임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헌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정치권이 도리어 헌재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헌법 111조에 따라 행정·입법·사법부에 3명씩 추천권을 부여한다. 각 3부에 관한 견제와 균형을 보장함과 동시에,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대통령과 국회에 각 3명씩을 둬 민심을 반영하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러나 이번 탄핵심판을 전후해 행정부가 국회 선출 후보자들 임명을 늦추거나, 국회가 국회 몫 재판관 선출을 늦추는 사례가 이어졌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26일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 후보자 3명을 임명하지 않았다. 헌재는 한 권한대행의 임명 보류가 ‘헌법재판소를 구성할 의무를 어겼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국회는 지난해 10월17일 국회 선출 몫인 이종석·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퇴임한 지 두 달이 넘도록 후임 재판관을 선출하지 않았다. 인사청문 기간과 대통령 임명 등의 절차로 최소 임기 만료 한 달 전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했지만 여야는 추천을 미루다 3명 추천권한을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다퉜다. 후임재판관 지명이 늦어지며 ‘재판관 7인 이상으로 심리한다’는 헌재법도 지킬 수 없게 돼, 헌재가 일시적으로 효력정지 결정을 하는 일도 발생했다. 당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었는데, 여당은 제1야당이 이 위원장 직무정지를 노려 탄핵소추를 했다고 반발했고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이 총선 민의를 받들지 않는다고 맞섰다.

헌재는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헌재법상 재판관이 결원된 경우 결원 날부터 30일 내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는 등의 조항이 있긴 하지만,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다. 결국 3·3·3 체제가 민심을 담아내야 한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정치권 상황에 따라 언제든 휘청일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헌재 구성을 정치권 합의에만 맡기지 말고 제도적으로 보완하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펴낸 ‘헌법재판관 공백에 관한 해외입법례와 입법개선방안’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연방헌법재판소법에 ‘비상추천제도’를 둬, 의회가 재판관 임기 만료 혹은 사직 후 두 달이 되도록 후임 재판관 선출을 하지 않으면 연방헌법재판소 전원합의체가 재판관 후보를 단순다수의결로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의회를 향해 두 달 내 선출을 강제하도록 한 셈이다. 스페인은 임기 만료 넉 달 전부터 재판관 임명 절차에 들어가고, 후임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재판관직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튀르키예 등은 예비재판관제도를 둬 정규재판관 부재 시, 예비재판관들이 재판을 대행하도록 했다.

헌재의 정치적 중립 보장을 위해 재판관 후보자 추천 과정에서부터 더 많은 의견을 듣게 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국회와 대법원, 정부에 ‘재판관후보추천위원회’를 각각 설치하고 위원회 구성에 다양한 계층을 참여시켜 ‘당리당략에 따른’ 재판관 임명이라는 시선 자체를 불식시키자는 주장이다.
일본의 경우 최고재판관은 판사로 10년 이상 있었던 사람을 비롯해 변호사, 교수직 등에 20년 이상 있던 자를 내각이 임명한다. 또한 임명 후 첫 총선거에서 국민이 투표로 파면을 결정할 수 있다. 과거 20대 국회에서는 15년 이상 대학 법학 교수직을 종사했던 사람(박주민 의원안)이나 법조경력 요건을 현행 15년에서 10년 이상으로 완화하고, 5년 이상은 각계 전문분야 혹은 고위공무원 종사자들도 재판관이 될 수 있도록(이완영 의원안) 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3·3·3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현행 3·3·3 방식은 헌재의 정치적 독립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라고 짚으며 독일 방식을 제안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하원과 상원이 각 8명씩 지명해 대통령이 임명, 총 16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 하원은 의회 의석 비율에 따라 12명으로 구성된 재판관선출위원회에서 8명 이상 찬성으로, 상원에서는 상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지명한다. 대법원과 대통령 지명 과정과 달리, 국회 지명 과정은 보다 투명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우리 헌법에 재판관 추천권과 재판관 임기를 6년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는 데다 독일의 경우 우리나라와 정치 구조가 다른 면이 있어 직접 적용은 쉽지 않다. 김선택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현재 대통령에게 대법원장 지명권한이 있는 점을 거론하며 “여당이 다수인 경우 대통령·대법원장·여당 몫까지 최대 재판관 8명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점과 대법원과 헌재가 동등한 위치인데 대법원장에 지명권을 주는 것은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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