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한국을 포함한 70여 개국에 대해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했다. 상호관세 발효 13시간 만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관세를 즉시 1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다른 국가들은 협상 의사를 밝히거나 미국에 대해 보복조치에 나서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미·중 관세 전쟁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됐던 무역전쟁을 뛰어넘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게 걱정스럽다.
급박한 관세 협상 국면에서 우리 정부로서는 일단 시간을 벌었다. 치밀하고도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다른 나라를 분리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건 자체가 협상의 여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는 “90일 동안 협상에 진전을 보여 관세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흘려들어선 안 된다. 이번 조치로 상호관세만 유예됐을 뿐 철강, 자동차 등에 대한 25%의 품목별 관세는 유지된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보복 차원에서 관세를 125%로 올렸다. 중국이 미국에 맞서 10일부터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율을 34%에서 84%로 올린 데 따른 대응 차원이다. 지난 2월 마약 펜타닐 유통 등을 문제 삼아 중국에 부과한 20% 관세와 추가상호관세(34%+50%)에다 무려 21% 더한 수치다. 이런 관세율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사실상 미국이 양국 간 교역을 포기한 폭탄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중국만 타깃으로 하고 나머지 국가는 관세를 ‘협상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두 패권국의 ‘강 대 강’ 대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충격을 던질 수 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미·중은 세계의 양대 축이자 우리나라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양대 교역국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 미·중 관세 전쟁과 이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는 우리 경제엔 치명타가 될 게 뻔하다. 미·중 패권 전쟁의 불똥이 한국 경제로 전이되는 걸 차단해야 한다. 6·3 대선 이후 차기 정부가 대미 관세 협상에 나설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국익을 극대화할 치밀한 전략과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미·중에 낀 샌드위치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수출·수입 다변화와 초격차 기술 확보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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