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매체 증거 없는 선관위 중국인 체포설 보도
‘12·3 계엄’ 당시 1·2 생활관 거주 직원 “황당하다”
연수원 입구·주차장 CCTV 확인… 특이 사항 없어
“우리가 중국인 해커라니 황당했죠. 저희끼리 평상시에 옷 좀 잘 차려입고 다니자고 우스갯소리도 했다니까요.”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에서 2022년 1월부터 생활하고 있다는 김모 사무관은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사무관이 머물고 있는 연수원 제2생활관은 1월 한 매체에서 12·3 비상계엄 당일 계엄군이 미군과 급습해 중국인 간첩 99명을 체포했다고 지목한 장소다. 믿기 어려운 이 보도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정국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선관위에 따르면 2생활관은 부산 출신의 김 사무관처럼 중앙선관위 소속의 비연고지 직원 30여명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이다. 현재는 직원 33명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사무관은 “계엄이 선포된 날 밤 저는 일찍 잠들었다가 남편의 급한 연락을 받고 깼다”며 “새벽까지 TV로 상황을 계속 지켜봤는데, 생활관은 매우 조용했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사무관은 2생활관은 애초에 중국 간첩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는 “같은 건물을 쓰는 직원들이 30여명밖에 없다. 매일 얼굴 보고 밥 먹는 사이인데 중국인 간첩이 여기 있을 수 있겠나”라며 “건물 구조상으로도 100명 가까운 간첩들이 머물며 무언가 일을 할 만한 공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연수원에는 2생활관 외에 1생활관(생활동)이 있다. 해당 언론은 2생활관을 간첩 체포 장소로 지목했지만, 1생활관에서 간첩 체포가 이뤄졌을 가능성은 없을까.
당시 1생활관에도 선관위 직원들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5급 승진자, 6급 보직자 직무교육 과정에 참여한 88명 직원과 8명의 외부 강사 등 96명으로 확인됐다. 12월2일부터 13일까지 2주간 연수를 받는 중이었다.
당시 1생활관에 있었다는 안모 사무관은 “간첩 보도를 접하고 정말 황당무계했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제가 12월4일 오전 1시쯤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별다른 소음은 듣지 못했다”며 “연수원은 다 개방돼 있고, 직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별도로 타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선관위 직원 모두나 대다수가 간첩이 아닌 이상 이들이 신분을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대다수가 간첩이라면 국가정보원 등 우리 정보기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당시 연수원 주변 여러 폐쇄회로(CC)TV에서도 중국 간첩 체포와 관련한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세계일보가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실이 중앙선관위, 국립농업박물관으로부터 제출받은 CCTV 영상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중국 간첩 체포와 관련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선 계엄군이 연수원 정문을 통해 1생활관이나 본관동 건물로 진입하는 장면은 없다.
연수원 정문 CCTV 영상에선 계엄군이 2생활관으로 향하는 모습까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당시 계엄군이 버스를 주차한 농업박물관 주차장 CCTV를 통해 계엄군이 누군가를 체포했는지는 확인해 볼 수 있다.
확보한 주차장 CCTV를 보면 오전 1시32분쯤부터 경찰차와 미니버스가 차례대로 등장한다. 이어 1시36분 경찰 안내를 받으며 계엄군을 태운 ‘대한민국 육군’이 적힌 대형버스 2대가 진입한다.
버스에서는 소수의 계엄군이 버스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보인다. 대부분 화장실 방향으로 향했다 버스로 돌아왔다. 최대 10명이 되지 않는 일부 계엄군은 버스 앞에서 무리 지어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성이며 대기했다. 대규모 병력이 버스에서 내리거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장면은 없다. 마찬가지로 계엄군에 의해 체포된 것처럼 보이는 인원이 버스에 탑승하는 모습은 영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후 외부에 있던 계엄군들이 모두 탑승하자 버스는 오전 2시25분쯤부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일각에선 선관위가 2생활관 주변 CCTV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선관위는 2생활관 주변 CCTV 영상은 자동저장 기한인 30일이 지나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12월3일 발생하고 중국 간첩 관련 보도가 1월16일 났는데 한 달 이상 차이가 나면서 2생활관 CCTV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선관위 측 해명이다.
만약 당시 계엄군이 비밀스럽게 중국인 간첩 체포 작전을 벌였다면, 이 CCTV를 확보하지 않았을 리 없다. 당시 언론도 체포 인원 등에 비추어 생활동인 1생활관에 주목했을 뿐, 2생활관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간첩설 보도 후 이미 한·미 군 당국도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은 2월4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이와 같은 의혹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단언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엑스(X, 옛 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한국 언론 기사에 묘사된 주한미군에 대한 내용과 주장들은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공익을 위해 책임감 있는 보도와 사실 확인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허위 정보의 확산을 방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후 이 매체가 취재한 정보원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이자 자신을 ‘미군 출신’이라고 속인 ‘캡틴 아메리카’ 안병희(42)씨로 드러나며 논란이 일었다. 안씨는 KBS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매체에 제공한 정보가 거짓이었다고 밝혔다. 매체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고, 선관위는 이 매체를 공무집행방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경찰은 9일 해당 매체를 압수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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