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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실로 변질된 의혹, 확신이 돼버렸다 [심층기획-당신도 음모론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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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4 20:00:00 수정 : 2025-04-14 21: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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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부정선거 음모론 등장
투·개표 참관 60대 사진 게재
“대선 위조 투표지” 온라인 확산

정치권도 동조… 의혹에 힘 실려
계엄 때 법원 난동사태로 이어져

사법부 ‘부정선거 근거 없음’ 판단에도 외면

부정선거 의혹 제기 60대 “100% 확신”
여전히 블로그 활동… 시위 벌이기도

“다른 피고인들보다 ‘부정선거’에 민감했던 사람입니다. 재판장님의 최대 재량으로 선처를 해주시면….”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9일 오후 3시39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4층의 한 법정. 녹색 수의를 입은 한 남성이 교도관의 안내를 받아 법정에 들어섰다. 재판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남모(36)씨는 덤덤한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그는 2개월 전, 이곳에서 벌어진 헌정사 초유의 서부지법 ‘폭력 사태’에 가담해 이 자리에 섰다.

 

남씨는 법정에서 자신이 법원 건물을 부순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 그는 하지만 그 동기에 관해서는 ‘부정선거’를 거론했다. 남씨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난동에 가담한 건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부정선거로 인해 국회가 장악되고 대통령까지 인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참담함과 좌절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꼭 언론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선거제를 바꿔야 한다”고 부정선거론을 굽히지 않았다.

 

부정선거 의혹은 온라인상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런 상황에서 선거에 불복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의혹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급기야 법원 난동사태와 12·3 비상계엄의 기폭제가 되며 사회적 혼돈과 폭력 사태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본지는 부정선거 ‘음모론’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출처를 추적했다. 그 결과 부정선거 음모론의 시작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른 2017년 5월9일 대통령 선거에 닿았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주요 근거로는 ‘위조 투표지’와 ‘QR코드’가 각각 거론된다. 형상기억종이로도 불리는 위조 투표지가 접히지 않은 채 빳빳하게 투표함에서 대거 발견됐고, 용지 속 QR코드에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부여한 선거구별 일련번호가 함께 적혀 있었는데, 선관위가 부여하지 않은 일련번호가 투표지에 찍혀 있다는 것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핵심 주장이다.

 

위조 투표지와 QR코드에 관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그 근거로 2017년 5월 대선 당시에 찍힌 몇 장의 사진을 제시한다.

소방기술자 김모씨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14일 세계일보는 온라인상에서 공유되고 있는 이 사진 속 설정 정보가 담긴 메타데이터(EXIF)를 비교해가며 포털 사이트 검색 데이터를 역순으로 나열하는 방법으로 최초 출처를 추적했다. 추적 결과 김모(60)씨가 만든 ‘대한민국 실태폭로’라는 블로그에 도달했다.

 

소방기술자인 김씨가 부정선거에 의혹을 품기 시작한 것은 2017년 5월9일 치러진 대선부터다. 그는 당시 경남 거제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참관인·개표참관인으로 참여했다.

 

종일 투표용지만 지켜본 김씨의 눈에는 사뭇 낯선 투표용지가 투표함에서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접힌 자국이 없는 빳빳한 투표용지였다. 그는 “투표지를 딱 쏟는데 접힌 자국이 없는 게 과반이 쏟아져 나왔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순간 부정선거를 의심한 김씨는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선관위 직원에게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부정선거 아니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김씨는 “이건 부정선거다. 개표를 중단하고 방송사가 와서 취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선관위 직원은 “개표를 방해하지 말라”며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김씨는 오후 11시쯤 개표장을 박차고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부정선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대선 이튿날인 5월10일 김씨는 자신의 블로그와 페이스북, 일간베스트저장소 등의 커뮤니티에 자신이 찍은 투표용지 사진 10장과 영상 4개를 올렸다. 그렇게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김씨는 부정선거가 일종의 음모론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취재진 물음에 “음모론은 근거 없이 주장하는 것인데, 나는 근거를 제시했다”고 맞받아쳤다. 김씨는 여전히 블로그를 통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광화문 인근에서 1인 시위도 이어가고 있다.

 

김씨가 2017년 5월 블로그에 올린 부정선거 의혹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세력이 편승하며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정선거 운동가로 알려진 김재홍 자유의창 대표가 각종 강연에서 김씨의 사진자료를 인용해 의혹을 전파했고, 언론사 스카이데일리는 김씨 사진을 첨부한 기사를 게재하며 논란을 확산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였던 2020년 4월 총선에서 패하자 비슷한 부정선거 의혹들을 잇따라 제기하기 시작했다. 민경욱 전 의원도 사전투표지를 입수해 투표 조작을 주장했고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평범한 자영업자였던 남씨는 유튜브를 통해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에 취했고, 직접 의혹을 규명하겠다며 황 전 총리가 대표를 맡은 ‘부정선거방지대’에 가입해 음모론을 맹신하다 서부지법 사태의 피의자가 됐다.

 

각종 부정선거 의혹이 잇따를 때마다 사법부와 선관위가 이를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대법원은 2022년 7월 민 전 의원이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들에 대해 “근거 없다”고 판단했다. 제21대 총선 이후 제기된 126건의 선거소송도 모두 기각됐다. 헌법재판소 역시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각종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서도 실체가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김씨와 남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음모론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고 진단했다. 특히 음모론이 정쟁의 도구가 되는 순간 그 폭력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국내에서 확산하는 음모론에는 정치적 양극화와 진영논리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특히 한국이나 미국의 경우 자기주장을 관철시키지 못했을 때 폭력을 사용하는 등 증오나 혐오의 깊이가 더 깊다”고 말했다.


경찰팀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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