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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결절 진단에도 출근”…급식실 폐암 산재 늘어도 안전은 사각지대 [미드나잇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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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5 21:58:00 수정 : 2025-04-15 22: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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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 폐암 산재 169건…13명이 폐암으로 사망
1급 발암물질 ‘조리흄’ 건강관리카드 대상서 빠져
“폐암과의 인과성·위험성 확인, 적극 관리 필요”

10년 넘게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해 온 박모(46)씨. 학생과 교직원을 포함해 하루 1000명이 넘는 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조리에 쓰이는 식재료만 300kg에 달한다. 환기구가 설치돼 있어도 튀김기 앞에 몇 시간째 서 있다 보면 뜨거운 화구 열기와 연기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 박씨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폐 결절 진단을 받았다.

 

박씨는 “튀김기 앞에 서 있으면 연기가 코와 입으로 그대로 들어와 마스크를 써도 소용없다”면서 “그렇다고 아프다고 쉬면 다른 동료들이 내 몫까지 떠안아야 하니 쉬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광주 남구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가 급식 메뉴인 600명분의 닭튀김을 조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초등학교 조리 실무사 권정자(53)씨는 얼마 전 동료가 폐암 확진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권씨는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며 “몸이 아파도 쉬지도 못하고 치료도 미룬 채 뜨거운 수증기와 기름 연기 속에서 일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학교 급식실에서 폐암으로 산업재해(산재) 판정을 받은 노동자가 늘고 있다. 노동계는 폐암 원인으로 지목돼 온 ‘조리흄’이 직업병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발급되는 건강관리카드 발급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유해 요인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보호가 미흡하다고 비판한다.

 

1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강원, 대구, 대전, 부산, 세종, 제주 등에서 학교 급식실 폐암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했다.

 

15일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산지부가 부산교육청 앞에서 학교 급식실 폐암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공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며 △급식실 조리·환기시설 등 작업환경 개선 △폐 CT 검진 정례화 등 건강관리 체계 마련 △조리흄 발암 유해인자 분류 및 건강관리카드 발급 대상 포함 등을 촉구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학교 급식실에서 폐암으로 산재가 인정된 사례는 169건이나 된다. 이 중 폐암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13명이다. 2023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급식 종사자 건강검진 결과, 10명 중 3명은 양성 결절이나 경계선 결절 등 폐질환을 앓는 것으로 확인됐다.

 

급식실 노동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건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농도 미세먼지인 조리흄이 꼽힌다. 조리흄은 튀김, 볶음 요리 등 고온의 기름을 사용할 때 다량 배출된다.

 

조리흄에는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등이 포함돼 있어 장기간 노출될 경우 천식이나 폐암 등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0년 조리흄을 폐암 위험 요인으로 분류한 바 있다.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공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직업병 치료 지원을 위해 운영하는 건강관리카드 제도에는 정작 조리흄이 빠져 있다. 건강관리카드는 노동자들이 작업 중 노출된 발암물질에 의해 발병할 수 있는 직업성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와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다.

 

노동부는 2025년 주요업무계획을 통해 건강관리카드 발급 대상을 기존 15종에서 19종으로 확대해 새로운 발암성 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에 대한 추적관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조리흄의 경우 유해성 근거가 부족하고 학계 이견이 있어 건강관리카드 발급 대상 포함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200명이 넘는 급식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으로 기록된 통계를 무시하고 현장의 통계와 역학조사 결과조차 외면하는 무책임한 태도”라며 “조리흄을 발암 유해인자로 분류하고 건강관리카드 발급 대상에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104조는 노동부 장관이 유해 인자의 분류 기준을 마련할 법적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시행 규칙 또한 ‘암을 유발하거나 증가시키는 물질은 발암성 유해 인자로 분류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조리흄은 이미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인 만큼, 폐암과의 인과관계와 그 위험성이 명백하다”면서 “국가가 산업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조리흄 같은 유해 물질을 보다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 사업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개선 대상 학교 급식실 중 개선된 곳은 기존 목표치의 10∼15% 정도에 불과하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274개 학교의 급식실 환기시설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사업 추진이 가능한 학교는 25곳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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