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3대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AI반도체 분야에 2027년까지 9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AI반도체 혁신 기업들의 성장을 돕는 1조4000억원 규모의 펀드도 조성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세계 각국의 반도체 경쟁은 산업전쟁이자 국가 총력전”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전시 상황에 맞먹는 수준의 총력 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해 반도체 산업 유치를 위한 투자 인센티브부터 전면 재점검하겠다”고도 했다. 뒤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622조원이 투입되는 경기 남부권의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대규모 전력과 공업용수를 차질 없이 공급하고 신속한 토지보상 등을 통해 조성 기간도 단축한다고 한다. 말잔치에 그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공장은 송전선로 설치에만 5년을 허비했고 SK하이닉스 용인 공장도 토지보상 등의 문제로 4년이 흘러서야 첫 삽을 떴다. 이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경쟁국들은 반도체 부흥에 명운을 걸며 가공할 속도전에 돌입한 지 오래다. 공장부지와 감세 혜택은 기본이고 공장건설 비용의 40∼70%까지 보조금을 지원한다. 미국은 이미 총 70조원의 반도체 보조금을 동원해 삼성전자, 대만 TSMC 등 해외 기업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일본도 불과 1년10개월 만에 TSMC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12조원의 보조금을 뿌리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중국, 인도 등도 수십조원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 지원이라곤 올해 말 일몰이 끝나는 투자세액공제(최대 25%) 연장이 거의 전부다. 한국 반도체의 위상이 위태로운 지경임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삼성전자는 AI반도체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졌고 시스템반도체 분야도 TSMC와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저하는 한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경쟁국처럼 보조금을 지급하고 법인세 인하 등 파격적인 세제 지원과 규제 혁파를 서둘러야 한다. 정부 대책 중 상당수는 관련 법률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여야는 총선 선거 기간에 반도체 전폭 지원에 한목소리를 냈다. 정치권은 선거 결과를 떠나 약속대로 강력한 반도체 지원법 통과와 세제 지원 등에 초당적 협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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