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3년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25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 룸에서 외환 딜러들이 바짝 긴장한 가운데 외환을 거래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2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6.4원 급등한 1078.9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04년 11월17일(1081.40원) 이후 3년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지난달 28일 1006.00원에 비해서는 상승폭이 무려 66.70원에 달한다.
이 같은 환율 급등세는 달러화가 강세로 전환한 데다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가면서 막대한 규모의 달러를 빼내간 결과다. 달러·유로 환율은 지난달 15일 유로당 1.60달러 선을 고점으로 급락세를 보이면서 1.47달러 선까지 떨어졌고(유로화 약세), 엔·달러 환율은 한 달 새 6엔 이상 급등(엔화 약세)하면서 110엔대로 올라섰다.
지난해 8월 말 이후 1년 동안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 규모는 약 41조4000억원대에 달한다. 주식을 팔아치운 외국인들은 재투자를 위해 한국 내에 자금을 보유하던 과거과 달리 최근에는 주식을 팔자마자 달러로 바꿔 본국으로 송금하고 있다.
시장에서 환율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달러 강세가 대세인 데다 외환 당국의 개입도 ‘약발’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더 이상 당국 개입 여부를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며 “그동안 당국 개입으로 다소 억눌려왔던 환율 오름세의 고삐가 풀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적극적인 시장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것을 정부가 극도로 꺼리고 있다는 풍문도 돌았다. 9월 외화 유동성 위기설이 돌고 있는 점을 감안해 당국이 실탄을 비축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수요 우위에 의해 균형 환율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환율이 상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 과정에서 오버슈팅(이상과열)되는 측면이 있다면 속도 조절의 필요성이 있겠지만 변동환율제도에서 일정 정도의 변동성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일부 수출업체는 환율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커지는 등 환율 상승의 덕을 보고 있지만 자녀유학 송금 부담을 진 ‘기러기아빠’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외환창구 담당자는 “외국에 송금하러 온 고객 가운데 돈을 부치지 않고 돌아가는 분들이 많았다”며 “당장 1만달러를 송금할 경우 며칠 사이 20만원가량을 손해를 보기 때문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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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 3년9개월만에 최고…16.4원 폭등 1078.9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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