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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일본속의 한국인 '신도래인'을 찾아서] ①日 자동차부품업체 '테크노피아' 박재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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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15 17:34:57 수정 : 2010-02-15 17: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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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업하겠다” 渡日 24년만에 매출 120억 中企 일궈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수한 문화와 기술로 일본 사회 각 분야의 주춧돌을 놓았다. 일본 역사는 그들을 ‘도래인(渡來人)’이라 부른다. 21세기 일본에선 제2의 도래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일본의 유학 문호가 확대되고 한국의 여행 자유화 조치가 취해진 1980년대부터 일본으로 건너가기 시작한 약 17만명의 한국인들이 일본 곳곳에서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다. 한일강제합병 100년을 맞아 신한일 협력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신도래인’의 활약상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제가 24년 전 처음 일본에 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한일 관계가 지금처럼 우호적이고 교류가 활성화된다면 신도래인들의 활약이 더욱 커질 겁니다. 재일동포 중에 재벌이 되신 분들이 이미 몇 분 있지만 1980년 이후 건너온 신도래인들 중에도 재벌이 나올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자동차부품 수입 제조업체인 ‘테크노피아’를 경영하는 박재세(51) 사장은 신도래인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도래인을 중심으로 결성된 ‘재일본한국인연합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외제 자동차 부품에 거부감이 강한 일본 사회에서 한국산 알루미늄 휠을 수입해 판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알루미늄 휠을 디자인하고 설계해 한국과 중국 등에서 자사 브랜드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조, 공급하고 있다.

그는 지방대학을 나와 현대중공업에 다니던 1986년 26살 나이에 단돈 6만엔(당시 환율로 20만원)을 들고 현해탄을 건넜다. 봉급쟁이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물에 나가서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이후 신문 배달과 공사장 일꾼 등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일본대학 경제학부를 1990년 졸업했다.

그가 졸업할 당시 일본 경제는 버블의 정점에서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동기생들이 3∼4학년 때부터 기업들에서 입사 제의를 받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그도 여러 기업의 손길을 받았지만 10년 정도 무역업을 익혀 직접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에 일본의 한 종합상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마냥 호황일 것 같던 일본경제는 1990년대 초반 버블이 꺼지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가 다니던 종합상사도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일본내 새로운 한국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신도래인’ 박재세 테크노피아 사장.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늘 꿈꾸던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도쿄 이케부쿠로에 있는 일본인 지인의 사무실 한쪽에다 책상 하나에 전화 한 대를 놓았다. 회사원이 아닌 사업자로 맞닥뜨린 일본 사회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회사 간판을 내건 첫 3년간 단 한 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주변의 시선은 따가워졌고 본인의 속도 바짝 타들어 갔다.

하지만 그는 힘들 때마다 “신(信)이 있으면 신(神)도 도와준다”는 부친의 생전 가르침을 실천하려 노력했다. 전남 여수에서 사업했던 그의 부친은 젊은 시절 일본 오사카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늘 자식들에게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신의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분이었다.

박 사장은 종합상사 시절 안과 치료기기를 수입해 한 병원에 납품한 적이 있었다. 당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병원 측에 “구입만 하면 끝까지 책임지고 애프터서비스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비록 회사가 도산하고 자신도 다른 일을 시작했지만 자신을 믿고 계약한 병원에 대한 신의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다. 휠 납품을 위해 뛰어다니면서도 틈틈이 병원을 찾아가 불편사항을 처리해줬다.

매사에 신의를 지키려는 그의 태도에 일본인들의 마음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업 3년째가 되는 날, 드디어 당시 가격으로 4억엔에 해당하는 5만개 제품을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애프터서비스를 받은 병원 측의 소개로 생각지도 않았던 의료기기 납품까지 하게 되면서 사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현재 그의 회사는 후지코퍼레이션, 토피, 엘로하트 등 일본 유수의 자동차 부품 상장기업 4곳에 휠제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2013년 일본 증시 상장을 목표로 연간 매출 120억원대, 직원 20명의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뻗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요즘도 박 사장은 신도래인의 바람직한 경영모델에 대해 늘 고민한다. 그의 회사는 한국인과 일본인 직원이 반반이다. 사실 두 민족이 한 조직에 있다 보니 문화적 갈등이나 시각차가 심심찮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이 같은 갈등을 양 집단의 업무 처리 특성을 조합한 창조적 경영으로 극복해내고 있다.

한국인 직원들은 일단 지시를 내리면 저돌적으로 추진하고 응용력이 뛰어난 반면 일본인들은 구체적 지시를 내릴 경우 자신이 맡은 부분에 대해 한국인보다 훨씬 꼼꼼하고 책임감 있게 처리해낸다. 이런 강점을 잘 융합하면 오히려 한국인이나 일본인만으로 구성된 경쟁사들과는 달리 또 다른 시너지를 창출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처음 인연을 맺게 되는 거래처 사람들에게 늘 자신이 한국인임을 분명히 밝힌다. 한인들 중에서도 민족 차별을 두려워해 출신성분을 감추거나 일본 이름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한국인이어서 차별받을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영업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사고를 갖고 있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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