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에 올라온 6편의 소설 중 가장 먼저 논의에서 배제된 ‘나마스테, 서귀포’는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양제해 모반사건과 김만덕, 김익강, 이강회 등의 실제 인물들을 연결시키면서 사료의 재해석과 상상력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탐문하려는 팩션이다. 하지만 제주도 이야기에만 머물러 그 이상으로 보편화되지 못했고, 역사적 실감 자체도 오히려 훼손되는 위험을 극복하지 못했다.
‘칼과 물’은 주인공 형사가 맡은 범죄의 재구성과 자신의 이야기가 교직되면서 재치있는 풍자가 잘 일어나고 있지만 이야기들이 무용하게 복잡하다. 당당한 태도로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뱀으로 죽이는 상황이나 결말에서 본인과 저승사자와의 문답도 다소 치기어리다. 무엇보다도 형사 주변의 사건들에서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좀 더 강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스피드 킹’은 젊고 발랄한 소설이다. 아빠방(퇴물 호스트들이 여자들을 상대하는 유흥주점)에서 만나게 된 루저 혹은 타자들의 삶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나름대로 자기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패기 있게, 그리고 탄탄한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내공도 돋보인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거 중심으로 인물들의 삶이 재구성되다 보니 서사나 사건이 약하다. 인문학적 지식이나 록(rock) 음악에 대한 정보가 지나치게 길고 날것인 채로 자주 제시되는 점도 서사적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에어포트 피크닉’은 화산폭발로 인해 한시적 난민이 된 등장인물들의 공항체류기를 사랑이라는 주제와 연결시킨 소설이다. 다양한 국적과 연령, 성별을 지닌 인물들의 전사(前史)가 센티멘털한 감수성과 작위성인 구성에 의해 전달되면서 문학적 질문이 아닌 윤리적 대답을 강요하는 듯한, 도덕 교과서를 닮은 ‘착한’ 소설이 되어 버렸다.
◇지난달 26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무궁화홀에서 열린 제7회 세계문학상 최종심사. 왼쪽부터 임철우 김미현 김형경 이창동 김화영 박범신 은희경 하응백씨. 이종덕 기자 |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된 ‘유령’은 탈북자들의 소외를 리니지 게임과 연결시켜 서술한 점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기존 탈북자 소설들처럼 남/북, 탈북자/비탈북자를 대립시키지 않고, 현실과 가상현실, 자살과 타살, 탈북자와 다른 탈북자들 사이의 모호함과 구분 불가능성을 오히려 리얼하게 문제 삼은 점이 돋보인다.
추리소설적 구성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에서의 긴장감과 개연성에서는 한계를 보인다. 그러나 ‘젊은’ 탈북자 세대의 고민이나 탈북 ‘이후’의 남한에서의 구체적 실상이 리얼하게 드러나면서 보다 진화된 탈북소설의 면모가 돋보인다. 이와 더불어 오인(誤認)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삶의 허무함과 비극성, 유령처럼 떠돌면서 부재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삶의 잔혹함과 아이러니를 당대의 이슈와 연결시키는 동시대적 실존소설로서의 묘미가 이 소설을 다른 소설들과 차별화시키는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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