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국무총리 지낸 4선 의원… YS와 악연 시련도

입력 : 2011-12-14 05:15:34 수정 : 2011-12-14 05:15: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정치인 박태준은 급성 폐손상 치료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철강 신화’를 이룩한 인물이다. 포스코를 오늘날 세계적인 철강사로 키운 그였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경남 양산(1927)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육사 6기 출신으로 5·16 쿠데타(1961)로 집권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정계와 인연을 맺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디딘 것은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 입법회의 경제분과 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다. 이듬해에는 민정당 소속으로 11대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됐고 이후 13, 14, 15대 의원도 지내 4선 경력을 쌓았다. 1990년에는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 대표에 오르며 정치 보폭을 넓혔다.

하지만 대표 취임 후 며칠 만에 이뤄진 3당 합당은 그에게 큰 시련이 됐다.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악연 탓이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민자당 대표인 YS와 내각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그해 10월에 탈당을 감행했고 다음해 포철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검찰에 수뢰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까지 됐다.

4년의 망명생활을 끝낸 1997년, 박 명예회장은 포항 북구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정치인 박태준’으로 돌아왔다. 그해 대선에서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에 합류한 뒤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후보로 단일화가 타결되자 자민련 총재로 취임했다. 이어 국민의 정부 때인 2000년 1월 ‘새천년 첫 총리’로 발탁됐지만 조세 회피 목적의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이 불거지면서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계복귀설이 끊임없이 거론됐지만, 그는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며 거리를 둔 채 포스코 명예회장직을 맡아왔다.

박세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세영 '청순미 발산'
  • 이세영 '청순미 발산'
  • 뉴진스 다니엘 '반가운 손 인사'
  • 박규영 '아름다운 미소'
  • 오마이걸 아린 '청순&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