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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3일간의 기록] ⑧ 사즉생, 생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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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08 09:28:19 수정 : 2014-09-11 02: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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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에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머리는 며칠째 못 감아 눅눅했고 수염은 덥수룩하게 얼굴을 뒤덮었다. 그가 입은 파란색 남방은 며칠째 빨지 않아 누더기 옷과도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은 마와리를 돌기 시작한 첫 모습과 사뭇 달랐다. 몸을 씻고,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전의 ‘나’를 버려야했다. 말끔 떨던 겉모습뿐만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소심한 성격 개조가 시급했다.

하지만 고난의 연속이었다. 경찰서를 돌며 형사과에서 사건을 취재했다. 그들은 쉽게 말해주지 않았다.

있는그대로 선배에게 보고하자 따끔한 충고가 돌아왔다. 단 한번 실패를 그대로 받아들인 내 잘못이 컸다. 포기할 수 없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홍삼 음료 박스를 들고 형사과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큰 소리로 인사하며 얼굴 도장을 찍었다. 그럴 땐 “젊은 사람이 예의가 바르다”는 말을 들었다. 이 방법이 안 통하면 싸울 태세로 화도 냈다. “젊은 놈이 예의가 없다”는 말을 형사들에게 들었다. 가끔은 방 안에서 나오는 소리를 엿듣기도 해야 한다.

끊임없이 나를 바꿔야했다. 빠르게 변화하며 선배가 지시한 취재를 해내야 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내가 누굴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라는 의문도 들었다. 주변에서 넉살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기자는 취재 환경과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때론 진지하게 때론 넉살좋게.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습생활은 단단한 틀에 박혀있던 나를 털어내는 과정이다.

잠을 못 자고, 씻지를 못 해도 괜찮다. 선배가 지시한 취재를 수행하지 못 해 꾸지람을 들어도 괜찮다. 그만큼 30년간 나를 채웠던 기존 모습은 없어지고 기자 DNA가 채워질 것이다.

이순신 장군님이 말씀하신 ‘사즉생, 생즉사‘는 수습기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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