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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짜리 배 버리고 선원 9명 살린 선장의 결단

입력 : 2015-07-17 11:44:47 수정 : 2015-07-20 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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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선적 금강호 정도영 선장, 15일 밤 부산 남형제섬 외해서 삼각파도 만나 배 기울자 즉각 '퇴선 명령'

 “퇴선하라, 퇴선하라!”

지난 15일 오후 11시20분쯤 태풍의 영향으로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부산 남형제섬 남서쪽 20 ㎞ 해상에서 부산항으로 향하던 부산선적 외끌이 저인망어선 금강호(65 t)에서 갑판장이 갑판 아래 선실을 향해 고함을 쳤다.

금강호는 지난 13일 부산남항에서 출항, 고기잡이를 끝내고 돌아오던 중 사고 해역에서 돌풍과 함께 4m가 넘는 집채만한 삼각파도를 만나 배가 한쪽으로 휩쓸렸다.

때마침 조타실에 있던 이 배의 선주이자 선장인 정도영(61)씨는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불가항력이었다. 그 새 큰 파도가 다시 한 번 뱃전을 때렸고, 배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전재산인 수십억짜리 배를 지킬 것인 지, 선원을 살릴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고민한 정씨는 배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17일 금강호 정도영(오른쪽) 선장과 금강호 선원 9명을 구조한 윤창호 이재호 선장이 긴박했던 당시의 구조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 선장은 이날 몸에 이상증세를 느껴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정도영 선장 제공

정 선장은 갑판장에게 선실에서 자고 있는 선원을 모두 깨워 조타실에 모이도록 지시했다.

인도네시아 선원 4명과 기관장, 조기장, 조리장이 뛰어왔다.

갑판과 선실, 기관실에 있던 선장과 선원 8명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히고 구명벌(압축돼 있다 비상시에 급팽창시켜 탈 수 있는 구명보트)을 터뜨렸다.

왼쪽으로 기운 배가 구명벌을 덮치면 선원들이 위험할 수 있어 대형 부의 2개를 묶어 바다로 띄웠다.

갑판장이 퇴선을 준비하는 사이 정 선장은 침착하게 움직였다.

인근에 동료 어선이 있어 조금만 버티면 구조가 가능할 것이라고 45년 경력의 정 선장은 판단했다.

정 선장은 무선통신장비앞에 앉았다. 긴급 구조신호를 보내자 마자 앞서 부산항으로 피항하던 같은 선단 소속 윤창호(65 t)로부터 사고해역으로 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금강호의 정확한 위치를 두세번 반복해서 타전했다.

선원들이 모두 바다로 뛰어든 사실을 확인한 정 선장은 마지막으로 배에서 뛰어내렸다. 아마르, 바테리, 토로, 카톡' 등 인도네시아 선원 4명과 기관장, 조기장, 조리장의 이름을 부르며 생존을 확인했다. 선원들은 모두 대형 부의에 달린 줄을 잡고 있었다.

순간 선장의 눈에 갑판장이 보이지 않았다. 갑판장은 다행히 다른 부의를 잡고 있었다.

파도를 맞은 금강호는 불과 20여분 만에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정 선장 등 9명은 높이 3∼4m 파도와 초속 15m 이상의 강풍이 몰아치는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중 윤창호의 서치라이트가 비쳤다.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인근 어선이 부산남항 부두에 정박해있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 제공
구조 선원을 태운 윤창호는 지난 15일 오전 2시45분쯤 부산남항에 무사히 입항했다.

정 선장은 “큰 파도를 맞은 뒤 좌우로 흔들리던 배가 왼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순간 배를 살리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즉각 퇴선조치를 이행했다”며 “배는 다시 구하면 되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식 같은 선원들을 모두 살렸으니 그것으로 족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 관계자는 “태풍으로 인한 높은 파도와 강풍 등 악천후 속에서 어선이 침몰했는데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선장이 전재산인 배와 고기를 즉각 포기하는 결단이 결국 모든 선원을 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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