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제45조에서는 불공정 거래행위의 금지를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9가지 유형을 열거하고 있다. 그 중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는 줄여서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시중에서는 ‘갑질행위’라고 한다. 우리나라 공정거래 실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규정이다.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법도 공정거래법의 이 조항에서 파생한 법이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 거래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정하기 위해 ‘불공정 거래행위 심사지침’(이하 심사지침)을 운영하고 있다.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가 성립하려면 우선 양 당사자 간 ‘거래상 지위’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 이에 대해 심사지침에서는 ‘계속적인 거래관계’와 ‘거래 의존도’라는 것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아왔다. 말하자면 이러한 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면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수 없고, 민사 사안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24년 12월30일 이러한 심사지침 내용이 개정되었다. 일회성 거래라 하더라도 일방이 그 거래관계에서 이탈할 수 없는 경우 등에는 거래상 지위가 인정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공정위는 이러한 개정이 서울고등법원(2022. 9. 28. 선고 2021누60719) 판결(확정)의 취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판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OO공사는 택지 개발사업을 하면서 부지 조성공사가 지연된 2단계 구역의 매수인들에게 토지를 사용할 수 없다고 볼 수 없는 시기까지 지연손해금을 요구하여 받고, 재산세를 대납하고 구상행위를 했다. 공정위는 이러한 공사의 행위를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것으로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였다. 관련 행정소송에서 원고인 공사는 심사지침상 요건에 따라 매수인과의 거래는 일회성 거래로서 계속적인 거래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매수인들이 토지를 공급받는 대신 이주정착금 등 법령상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으므로 의존적인 관계도 아니라는 주장을 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거래상 지위를 판단하는데 거래 의존도는 필수적인 기준이지만, ‘계속적 거래관계’에는 반드시 요구되는 요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즉 일회성 거래였지만, 매수인들이 토지의 매도인들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없었고, 자유로운 선택으로 개발사업의 이주대책 및 생활대책 대상자가 된 것이 아니어서 거래상 지위가 성립된다고 판시했다.
법원 판결은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에 대해 매우 전향적으로 판결한 것이고,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첫째 거래상 지위의 판단과 관련해 획일적이고 계량적인 기준보다 사안의 내용에 따라 탄력적으로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일회성 거래라 하더라도 의존적 관계가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와 같이 민사적 구제방안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거래상 지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함으로써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규정의 독자성을 다시 한번 인정했다.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가 전통적인 경쟁법 체계에서는 다소 홀대를 받았지만, 우리나라 공정거래 제도에서 실무적인 중요성은 다시 한 번 확인이 된 것 같다.
이 판결과 심사지침 개정에 대해 여러 논란이 제기될 수 있으나, 필자는 판결의 내용과 그에 따른 심사지침의 개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생각된다. 경쟁 제한과 관련이 없는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의 성격상 경쟁법적 논리를 지나치게 개입시킬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계속적 거래관계뿐만 아니라 거래 의존도라는 요건에 관해서도 심사지침의 내용처럼 상대방 사업자에 대한 매출액의 비중 같은 계량적인 지표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계속적 거래관계라는 요건과 거래 의존도는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판결에서도 계속적 거래관계는 거래 의존도 판단을 위한 고려 요소로 보았다. 기업들은 이러한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에 관련된 법리의 변화를 잘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규제의 실무적인 비중으로 볼 때 법 집행에도 다소간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신동권 법무법인 바른 고문(전 공정거래조정원장) dongkweon.shin@barunlaw.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