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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러지" vs "건방져"…궁정동 두 여인 중 누구 말이 맞나

입력 : 2006-11-03 17:35:00 수정 : 2006-11-03 1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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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10·26 궁정동 연회에 참석했던 두 여인. 왼쪽부터 심수봉, 신재순)
최근 가수 심수봉(51)씨가 일본 아사히신문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 화제다. 심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연회에서 ‘황성 옛터’를 불러 박 대통령을 눈물짓게 한 일화, 10·26 사건 직후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에게서 위로금을 받은 사실 등을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심씨의 회고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1994년 펴낸 저서 ‘사랑밖에 난 몰라’를 통해 박 대통령과의 인연, 10·26의 뒷이야기 등을 비교적 상세히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가장 논란을 일으킨 것은 1979년 10월26일 밤 궁정동 연회장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느냐였다. 세간에 알려지기론 김 부장이 차지철 경호실장을 겨냥해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제대로 되겠습니까”라고 내뱉은 뒤 차 실장과 박 대통령에게 총을 쏜 것으로 돼있다. 하지만 심씨는 저서에서 이런 ‘통설’을 완전히 부인했다. 그는 “김 부장이 대통령 앞에서 다른 참모들과 다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차 실장에게) 총을 쏘기 전 김 부장이 한 말은 ‘이 새끼, 넌 너무 건방져’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심씨의 새로운 증언은 곧 반격에 부딪혔다. 궁정동 연회장에 합석한 ‘또 다른 여인’ 신재순(50·당시 한양대 3학년)씨가 반론의 주인공. 신씨는 심씨의 ‘사랑밖에 난 몰라’보다 4개월쯤 앞서 낸 자전적 소설 ‘그곳에 그녀가 있었네’에서 10·26 때 김 부장이 한 말은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이라고 기술했다. 1979년 당시 합수부에 근무하며 10·26 사건을 수사한 백동림(69·육사15기)씨 역시 신씨 손을 들어줬다. 그는 1995년 출간한 회고록 ‘멍청한 군상들’에서 “심씨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며 기존 통설을 옹호했다.

물론 심씨는 김 부장이 총을 쏘기 전 내뱉은 말은 “이 새끼(차지철 실장을 지칭), 넌 너무 건방져”란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듯 MBC는 1995년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10·26 장면을 재연하며 과감히 심씨의 ‘소수설’을 채택했다. 김 부장(박근형 분)이 박 대통령(이창환 분)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전 “이 새끼 ∼ 건방져”라고 외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 ‘제5공화국’을 제작할 때 MBC는 심씨의 소수설 대신 통설 쪽으로 돌아섰다. ‘제5공화국’의 10·26 장면에서 김 부장(김형일 분)은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이라고 말한 뒤 박 대통령(이창환 분)을 쏜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알 순 없지만 일단 사건 현장에 있었던 신씨와 사건 수사를 맡은 백씨의 증언이 일치하는 만큼 통설인 ‘버러지설’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심씨의 ‘건방져설’은 여전히 소수설로 남아 있는 상태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사건을 목격한 두 여인의 기억에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훗날의 사가들이 백·신씨의 통설을 그대로 따를지, 아니면 새로운 증거와 진술에 의거해 심씨의 소수설을 복원시킬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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