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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신경림 열번째 시집 ‘낙타’

입력 : 2008-02-22 19:21:22 수정 : 2008-02-22 19: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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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물으면 아무것도 못 본 체 낙타를 타고 그냥 가리라”
◇10번째 시집 ‘낙타’를 상재한 신경림 시인은 “떠돌아다니면서 친해진 사람과 자연이 내 시를 만든다”고 말한다.
“나 건달이야. 평생 사회규범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

신경림(73) 시인은 자신을 ‘건달’이라 칭한다. 소싯적 ‘어깨 좀 썼다’는 게 아니라 질서에 순응치 못한 예술가로 살아왔다는 뜻이다.

“제도와 규칙 밖을 맴도는 자가 반드시 해롭지는 않지요. 오히려 안을 더욱 면밀히, 사심 없이 관찰할 수 있습니다. 바로 시인이 할 일이지요.” 

그는 죽는 날까지 시인이자 건달로 남을 생각이다. 최근 열 번째 시집 ‘낙타’(창비)를 펴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건달 생활을 청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무법자를 자칭하지만, 그의 시는 난폭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난해한 현대시에 대해 “시를 억지로 만들지 마라”고 ‘한방’ 날린다. “시인이란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보다 쉽게, 보다 힘있게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믿는 터다. 요령부득 독백으로 독자를 아연케 하지도 않는다.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서 한갓 눈물 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었다 해도”(‘눈’에서).

한 인간이 생을 돌아볼 때 느끼는 회한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자신의 마음을 터놓았을 뿐이므로, 시는 어렵지 않다. 삶을 초탈했다는 허세나 자기 연민을 벗어났기에 거부감이 없다. 언어 또한 발음 근육을 어색하게 하지 않는다. 현란한 수사를 덧칠하는 대신 일상어에 리듬을 섞었다. 곡만 붙이면 금세 흥얼거릴 수 있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낙타’에서)

그는 이 시를 한 호흡에 쓰고, 한 자도 고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시상을 오랫동안 공글렸다가 날이 찼을 때 바로 뽑아냈다. 그는 시를 자연스럽게 ‘쓰’지, 인위적으로 ‘만들’진 않는다. 그의 시가 밋밋하지 않으면서 쉽게 읽히는 이유다.

이번 시집은 유독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편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노 시인은 “죽음을 염두에 뒀다기 보단 항상 내 자취를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고 말한 서정주와 달리 그의 자기성찰은 부끄러움과 회한 투성이다.

“내 몸의 상처들은 왜 이렇게 추하고 흉하기만 할까”(‘고목을 보며’에서)

시인은 “한 인간으로서 만족스럽게 살지 못한 탓”이라고 말한다. 그가 겪었던 방황과 부적응은 권말에 실린 산문 ‘나는 왜 시를 쓰는가’에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청년 시절에는 “세상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가 시시해지고 문학이 우스웠”고, 시 대신 민요에 집착하기도 했다. 시인의 명확한 길을 발견한 때는 2002년 시집 ‘뿔’에 이르러서다. 노 시인은 “그제야 시 쓰기란 남이 알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찾아다니는 일임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실제 그의 시는 떠돌면서 얻은 것들이다. 시인은 “여행 중 내딛었던 발걸음이 곧 시”라고 말한다.

칠순을 훌쩍 넘겨서도 터키, 미국, 히말라야, 콜롬비아 등 이국 땅을 거닐면서 세상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시로 옮긴다.

공익적이면서 우아한 건달생활이다.

글·사진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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