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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이 부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광개토대왕비’가 중국 당국이 설치한 유리 보호벽 안에 놓여 있다. 단체 관광객이 사라진 뒤, 중국 직원과 안내원이 대왕비 주변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미 2004년도부터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역사전쟁을 경험한 사학계 등 한국이 긴장하는 이유다. 중국은 고구려를 자국 지방정권으로 간주하면서 고구려 유적을 관광상품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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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상태가 양호할 때 찍어놓은 고구려 고분벽화 ‘주작도’. |
한중 수교 16주년(24일)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방한(25일)을 앞두고, 고구려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는 중국 지린(吉林)성의 지안(集安) 일대를 돌아보았다. ‘고구려 고분벽화 복원사업’을 준비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비하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었다.
지안 방문은 지난 17일 오후 3시 중국 동북지방 교통 요지인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공항에 내리면서 시작됐다. 올림픽 열기가 미처 전해지지 않은 만주 벌판의 밤 공기를 가르며 차로 9시간 넘게 달려 자정 넘어 지안의 숙소에 도착했다.
지안은 고구려의 초기 수도였던 국내성이 있던 곳이다. 이곳의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 환도산성 등은 고구려 초기 문화와 역사를 잘 보여준다.
중국 정부는 한때 한국 관광객의 유적 답사를 불허했지만 지금은 관광상품화에 적극적이다. 지난 5월 1일부터 이들 고구려 유적지 관람에 100위안을 받고 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중심으로 하루에 3000명 이상이 다녀간다는 게 중국 직원의 설명이었다. 이들 유적지에는 중국인 안내원과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 감시가 주임무인 듯한 직원은 분주해 보였고, 한국인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중국인 관광객을 위해 설명을 하는 안내원은 한가해 보였다.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광개토대왕비였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 신라의 역사를 알려주는 광개토대왕비는 방탄유리 안에 있었다. 만주 벌판을 넘나들던 광개토대왕의 광활한 꿈이 유리벽에 갇힌 것 같아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방학을 맞이해 한국에서 온 단체관광객들이 조선족 가이드의 설명을 차분히 듣고 있었다. 가이드가 광개토대왕비에 쌓이는 한국 지폐를 가리키며 각성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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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장군총. 장군총은 1600여개의 돌로 만들어진 사다리꼴 묘지로 ‘장수왕릉’으로도 불리고 있다. |
“우리의 선조를 기리는 대왕비가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있는데, 적선하듯이 1000원짜리 지폐를 함부로 던지지 마세요. 우리의 풍습이 아닐 뿐 아니라 후손으로서 보일 태도가 아닙니다.”
기관원으로 보이는 중국인 직원이 방탄유리 주변을 감시하며 관광객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중국 직원은 유적지 내부의 사진 촬영을 일절 금지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국에서 온 60대 노인이 광개토대왕비를 향해 절을 하자 기관원이 다가와 이를 강력히 제지하기도 했다.
장수왕릉으로 뒤늦게 알려진 장군총에 오르니, 멀리 광개토대왕비가 서 있는 곳과 국내성이 보인다. 생전에 자신의 묘지를 만드는 고구려의 풍습을 고려할 때, 죽어서도 고국과 부친을 보살피려 했던 장수왕의 의지가 드러난다.
비가 내리는 중에 찾은 ‘오회분 5호묘’에서는 연꽃으로 장식된 고분벽화를 제대로 볼 수 없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분벽화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으나, 제대로 보존이 안 됐기 때문이다.
서용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는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과 종교관을 표현한 벽화는 고구려 문화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도구”라며 “고분벽화는 고구려가 독자적 문화를 만들어낸 것을 보여줘 중국의 역사왜곡을 방지하는 데도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고분벽화를 복원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북한에 남아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인 강서대묘를 그래픽으로 복원 중인 포스트미디어 강현국 이사는 “북한 지역의 고구려 벽화에 접근하기는 어렵고, 가장 유사한 중국 지안의 벽화의 보존상태는 열악하다”며 “다양한 역사적 고증을 거쳐서 고분벽화를 복원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지안=박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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