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발해 고유의 민족적 특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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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한·중 공동학술대회에 참석한 학자들이 양국 관계의 성격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 |
이번 학술대회에 참석한 중국 학자들은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기존의 ‘억지’ 주장은 펼치지 않았다. 오히려 ‘동북공정’은 지방정부 차원의 일이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왕위안저우(王元周)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는 “무역과 문화 등에서 이미 활발한 교류가 대세인 상황에서 부분적인 문제를 놓고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양국 모두에 득보다는 실이 크다”며 “사실관계를 갖고 서로 역사를 탐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신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중국 학자들은 발해가 중국 문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리쯔셩(李志生)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는 발표문 ‘당대 시안(西安)지역의 장례형식으로 본 발해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무덤’에서 “발해인들은 당나라 제도와 당나라 습속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으며 적어도 발해 상층부는 한자를 사용하고, 유교와 불교를 신봉했다”고 주장했다.
리 교수는 “두 공주의 묘비에 한자가 적혀 있으며 글 내용도 유가적인 사상이 충만해 있다”며 “발해인들은 중국의 문명을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학습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발해가 당의 문화를 흡수했지만 어느 정도였는가는 앞으로 더 살펴봐야 한다며 다소 유연한 시각을 드러냈다.
중국 학자들의 시각에 대해서 한국 학자들도 적극 의견을 개진했다.
임상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들 공주의 묘실에 당나라 문화적 성격도 있지만 발해 나름의 민족적 특질도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리 교수의 발표에 대해 “발해사 연구동향을 지나치게 중국 학계 중심으로만 바라본 것 같다”며 “러시아, 남북한 등의 연구는 중국과 상당히 다른 측면에서 진행되는 등 나라마다 발해사 연구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학계가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있듯이, 중국 학계도 과장된 논리와 역사 접근은 제지돼야 한다는 주장이자 조언인 셈이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조선의 의리론’이라는 주장을 개진했다.
이 교수는 발표문 ‘조선중화주의에서 한청조약까지’에서 “조선은 명·청 교체기에 중국에 대해 굳건한 의리를 보였다”며 “이익보다는 국가 간의 의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성실외교’를 표방하고 지킨 조선의 경험은 결코 허망한 게 아니었다”고 역설했다.
박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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