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비해 기록 거의 없는 인물에 허구입혀 흥미유발
시청자도 친숙한 인물의 사연·고민 상상에 즐거움이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 역할을 맡은 김민선. |
수목 드라마 최고 자리를 선점한 KBS 2 ‘바람의 나라’와 24일 도전장을 내미는 SBS ‘바람의 화원’이 그렇고 개봉 2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신기전’과 11월 개봉 예정인 ‘바람의 화원’ 영화버전 ‘미인도’도 팩션사극이다.
이 밖에도 11월 중순 KBS2 주말극 ‘대왕 세종’과 바통 터치하는 ‘천추 태후’ 역시 작가가 짤막한 사료에서 출발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팩션물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팩트(Fact)라는 친숙함과 픽션(Fiction)이라는 낯설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호기심을 유발하는 극적 재미와 함께 ‘절대적인 역사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라는 전복과 역설의 쾌감을 팩션 열풍의 이유로 꼽는다.
# 명성에 비해 기록이 거의 없는 신윤복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긍재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화가로 평가받는 단원 김홍도(박신양 분)와 혜원 신윤복(문근영 분)이 주인공이다. “신윤복은 남장 여자”라는 파격을 선보인 이정명씨의 동명 팩션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김홍도-신윤복 간 치명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춘 영화 ‘미인도’와 달리 신윤복이 스승 김홍도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죽음에 얽힌 왕실과 조정 내의 음모를 좇는 추리극 형식이다. 여기에 두 천재 화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각기 다른 스타일을 지닌 이들의 예술적 경쟁의식도 함께 펼쳐진다.
신윤복이 소설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소재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파격적인 작품과 명성에 비해 역사적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신윤복 최고 전문가라고 평가받는 명지대 이태호 교수(미술사학)는 신윤복 열풍에 대해 “혜원은 ‘고령 신씨로 아버지 신한평에 이어 화원으로 첨사를 지냈다’ ‘풍속화를 잘 그렸으나 저속한 그림을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정도의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면서 “우리 회화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담하게 색정을 표출함으로써 당대 사대부의 허위의식을 꼬집은 혜원의 풍자적 야유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말했다.
◇영화 ‘신기전’ |
# 팩션은 상상을 위해 사실을 끌어올 뿐
역사적 기록이 적을수록 작가나 연출자가 개입할 여지는 커지며 이에 대한 시청자의 흥미는 배가된다. ‘바람의 화원’ 연출자 장태유 PD는 “신윤복은 기록이 딱 두 줄밖에 없고 사망연도도 알려져 있지 않아 상상의 여지가 충분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역사 속 유명인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관심이 가는 데다 특히 신윤복의 경우처럼 간략하게 남아있는 역사적 사실 뒤에 감춰져 있을 익숙한 인물에 대한 사연과 고민을 상상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 시청자의 흥미와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란 자신감의 표현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
‘바람의 화원’ 등 요즘 팩션물은 사극을 둘러싸고 늘 있어왔던 ‘역사 왜곡’ 논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듯하다.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과거 정통사극과 달리 팩션사극은 이야기가 분명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에서 출발하지만 그 내용 대부분은 허구(거짓이 아닌)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역사학)는 “역사가의 역사서술과 역사소설, 역사드라마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면서 “역사소설가와 사극제작자는 역사적 상상력을 펼칠 목적으로 사료를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팩션사극은 친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익숙한 것에서 전복을 꿈꾸는 대중적 욕망과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윤석진 충남대 교수(국문학)는 말한다. 윤 교수는 “팩션물은 왕조와 영웅 중심으로 빈틈없이 짜여진 정통사극보다는 내시와 기녀, 그리고 천재 등 그간 드라마 등에서 소외돼 있던 인물을 중심으로 여러 가능성과 결말을 열어두는 퓨전사극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흥미와 재미, 일탈의 쾌감까지 제공하는 팩션물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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