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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변곡점에 선 두 남자, 사랑에 빠지다

입력 : 2008-12-25 18:50:38 수정 : 2008-12-25 18: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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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쌍화점'의 두 주연 조인성·주진모
◇‘쌍화점’의 주연 주진모(오른쪽)와 조인성은 “신인 연기자의 마음으로 이 영화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말한다.
이종덕 기자
30일 개봉하는 영화 ‘쌍화점’의 두 주연 주진모(34)와 조인성(27)은 ‘영화배우’다운 외모를 자랑한다. 배우를 꿈꾸는 연기자에게 이러한 수식어는 뼈아프다. 궁극적인 지향점이 모델이 아닌 이상 ‘꽃미남’ ‘조각배우’라는 상찬은 되레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쌍화점’은 이들 연기 인생의 절박한 변곡점이다. ‘스타일 좋은 연기자’에 그쳤던 주진모는 지난해 ‘사랑’을 통해서야 비로소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휘청거리는 청춘’ 이미지의 조인성도 마찬가지. TV드라마 쪽에선 ‘뉴 논스톱’과 ‘발리에서 생긴 일’, ‘봄날’ 등으로 연기자 조인성을 각인시켰지만 영화 쪽에선 2006년 ‘비열한 거리’가 유일하다. “연기를 배웠다”는 다소 낯뜨거운 연기자를 벗어나 “배우를 꿈꾼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야 할 시점, 두 연기자는 유하 감독을 만났다.

#연기자와 배우 경계선의 두 스타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충무로에서 독특한 입지를 획득한 감독의 퓨전사극이라는 점에서 연말 극장가 최대 기대작으로 꼽혔던 ‘쌍화점’. 하지만 스토리는 충무로의 이야기꾼 신작답지 않게 다소 빈약하다. 얼핏 이 영화는 ‘왕의 남자’(미소년을 향한 국왕의 욕망) ‘음란서생’(왕실 사랑에 관한 새로운 해석) ‘달콤한 인생’(조폭 누아르적 정서) 심지어 ‘미인도’(팩션 소재의 격정 멜로)의 정수만을 절묘하게 짜깁기한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쌍화점’이 관객에게 이들 영화의 연속선상이 아닌 ‘쌍화점’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순전히 배우의 힘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계속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은 두 주연의 ‘눈빛’이다. 애틋함과 희열, 분노와 두려움, 질시와 절망이 두 배우의 눈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감각적인 소재와 탄탄한 시나리오, 섬세한 연출력’ 등으로 정평이 난 감독 보다는 “평범한 연기자를 배우로 만든다”는 그의 능력에 더 방점을 찍고 싶을 정도이다. 주진모와 조인성 두 배우 역시 “촬영 내내 고달펐지만 연기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쏟아부었다”고 말한다. 30일 이후 관객 평가를 절치부심 기다리는 두 배우를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쓰디썼던 인내만큼 열매가 달았으면”

주진모는 “배우가 고통스러울수록 관객은 즐겁다”는 말로 지난 1년간의 고생을 갈무리했다. 시·서·화(詩書畵)에 능했다는 고려 공민왕 역을 맡아서가 아니다.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거문고 연주와 서예, 그림, 승마와 검술 등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는 6개월은 차라리 선명해서 좋았다. 본격 촬영에 들어간 지난 6개월 그를 괴롭힌 것은 ‘왕’과 ‘남자’라는 복합적 캐릭터를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였다. 유하 감독이 그를 다그치고 닦달한 부분 역시 섬세한 감정선. 주진모는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왕이라는 설정은 주제라기보다 소재에 불과했다”면서 “무치한 왕보다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원초적 감정, 즉 욕정 연민 아량 질투 집착을 전면에 내세운 역할”이라고 말했다.

기대하는 눈빛이나 표정, 말투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재촬영하는 유하 감독의 성향 탓에 그의 ‘페르소나’(감독의 특정한 연출 스타일을 제대로 표현하는 배우)로 불리는 조인성에게도 ‘쌍화점’의 홍림(왕의 친위부대 건룡위 수장)은 힘든 역할이었다. 조인성은 “처음에는 왕의 여자이자 왕후의 남자, 건룡위 동료의 맏형 등 영화에서 가장 복잡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 홍림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아 감독님으로부터 ‘다시’란 말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다”면서 “왕과 있을 때는 내 아버지이자 스승, 친구,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왕후(송지효)와 있을 때는 국모이자 사랑하는 이의 여자, 내 여자라고 여기며 연기에 몰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홍림을 “왕에 의해서 자아를 형성한, 하지만 대리합궁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다중복합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공민왕과 홍림, 주진모와 조인성

사진작가 조세현은 주진모에게서 ‘권위와 고독의 양면성’을, 조인성에게서는 ‘여리디 여린 반항기’를 읽어냈다. 이들은 이번 영화에서 기존 이미지를 벗고자 부단히 노력했다고 토로한다. 주진모는 “지금까지 내가 가진 연기 패턴을 다 바꾸고 신인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뒷모습까지 연기했다”고, 조인성도 “연기자로서 ㄱㄴㄷ을 새로 쓴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감독이 자신들에게서 새 가능성을 발견, 공민왕과 홍림이라는 역할을 맡긴 만큼 스스로도 정형화하지 않은 캐릭터를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쌍화점’에 대한 관심이 행여 수위 높은 노출신에 쏠릴까 우려스럽다는 이들은 각각 섬세한 감정이 돋보이는 신을 최고 명장면으로 꼽았다. 주진모는 왕후를 찾아간 홍림을 밤새 기다렸던 왕이 ‘어디갔다가 이제 오는거냐?’라고 묻는 장면을 찍은 뒤 하루종일 ‘내가 정말 왕이구나’라는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고 한다. 조인성은 홍림이 왕후와 실질적 대리합궁을 한 뒤 왕과 함께 거문고를 타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 거문고 합연은 순수한 애정이 가득했으나 그날 이후에는 예전과 다른 서먹함 같은 게 잘 나타났다”고 흡족해했다.

이제 ‘나, 공민왕은 이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는 주진모는 “‘사랑’을 통해서 주진모가 보였다면 ‘쌍화점’에서는 ‘주진모가 이제서야 배우의 냄새가 나는구나’라는 소릴 듣고 싶다”면서 “작품마다 관객의 눈을 배신하고 뒤통수치는 배우가 될 터”라고 말했다. ‘클래식’ ‘남남북녀’ ‘비열한 거리’ 등 전작 모두 ‘출연 당시 가장 하고 싶었던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인성 역시 20대의 마지막 작품 ‘쌍화점’ 이후 행보에 대해 “규정되지 않은, 기존 이미지를 과감하게 부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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