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의 이호재 감독
2006년 말 영화 제작사 ‘비단길’에 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첫 작품 ‘음란서생’을 내놓은 비단길이 차기작 ‘추격자’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김수진 대표는 “집에서 시나리오를 못 쓰겠으니 책상 하나 내달라”는 그의 부탁에 선뜻 방 하나를 비워줬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영화에 대한 그의 능력과 열정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였다. 무엇보다 사람이 좋아 “‘입봉’하게 되면 꼭 나와 하자”고 러브콜도 수없이 보냈다. 일주일쯤 지나 뭘 쓰고 있는지 물었다. 주식으로 사기치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했다. 한 번 훑어보니 김 대표 특유의 감이 왔다. ‘오션스 일레븐’과 ‘범죄의 재구성’의 장점만을 절묘하게 결합한 시나리오였다. 비단길의 세 번째 작품이 그날 그렇게 확정됐다.
최근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호재(36) 감독은 그의 장편 데뷔작 ‘작전’의 장르를 굳이 나누자면 케이퍼필름(caper film) 혹은 화이트칼라 범죄스릴러라고 소개했다. ‘작전’은 솜씨가 뛰어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불가능에 가까운 범죄를 모의해 실행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표적 케이퍼필름인 ‘오션스 일레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집단 내의 배신과 음모에 좀 더 방점이 찍힌다는 점에서 범죄스릴러 ‘범죄의 재구성’ 느낌도 난다.
이 감독은 “있는 사람들의 허위 의식이나 가진 자의 무한 욕망을 표현해내는 데 중점을 둬 스릴러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영화”라고 설명했다.
‘작전’은 주식 시장을 소재로 한 최초의 영화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인간의 온갖 희노애락이 꿈틀대지만 각종 전문용어가 등장하고 눈에 띄는 액션이 없는 이곳이 영화화하기에는 녹록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 전문 공간의 리얼리티와 드라마적 감동 모두를 잡으려다 쓰러진 TV드라마가 어디 한둘이던가. 지난 2년여간 수많은 증권가 사람들과 투자자들,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고 관련 서적과 인터넷사이트들을 섭렵하며 취재했다는 이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고심한 지점도 중심인 드라마에 리얼리티를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였다. 그는 “큰 틀에서 꼭 설명이 필요치 않은 주식용어는 최대한 배제했고 관련 정보를 줘야 할 때는 자막보다는 극적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내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통정거래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통정거래는 주식을 매수할 사람과 매도할 사람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가격으로 거래해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주가조작의 대표적 방법이다. 펀드매니저인 조민형(김무열)과 브라이언 최(김준성), 그리고 프로 ‘개미’ 강현수(박용하)가 술집에서 폭탄주를 서로 돌려가는 방식으로 통정거래의 방법이나 과정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곧이어 작전세력에 의해 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개미’들의 울분이 터져나오고 “니들은 세력들한테 당했네 하면서 우는 소리해도 대가리 딸려서 깡통 찼단 소린 죽어도 안 해요”라는 식의 비아냥이 이어진다. 이 감독 역시 “감정도 끌어올리면서 상황도 설명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장면”이라고 흡족해했다.
영화적 긴장감과 생동감은 카메라와 편집을 통해 높였다. 주식시장이라는 게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아무리 많은 돈이 오고가도 직접적으로 보이는 게 없는 탓이다. 카메라 두 대로 매신을 찍어 각 배우들의 표정과 동작을 담아냈고 핸드 헬드로 긴박한 호흡을 표현했다. ‘작전’의 필름 수는 한국 영화 평균 컷 수의 2배에 달하는 3600컷. 영화 ‘범죄의 재구성’ ‘타짜’ ‘세븐데이즈’에서의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주목을 받은 신민경씨가 맡았다. 이 감독은 “관객이 ‘언제 팍 터질까’하고 숨죽여 기다리기보다는 매신마다 유쾌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결말이 너무 착한 것 아니냐”는 의견에 “기발한 반전에 승부하는 스릴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토니 길로이 감독의 ‘마이클 클레이튼’의 편안하고 긍정적인 해결 방식을 좋아한다”면서 “관객이 주인공에게 심정적으로 동화돼 팍팍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5세 이상 관람가다.
>> ‘작전’은 어떤 영화?
찌질한 인생을 한방에 갈아타기 위해 주식에 도전한 강현수(박용하)는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된다. 독기를 품고 수년간의 독학으로 실력을 갖춰 프로 개미가 된 현수는 작전주 하나를 추격해 7000만원을 번다.
그런데 하필 그 작전주가 조폭 출신 황종구(박희순)가 작전계 특급 에이스 조민형(김무열)과 손잡고 작업했던 게 화근이 됐다. 황종구는 남다른 능력을 지닌 그를 끌어들여 이번엔 600억 작전을 공모한다. 여기에 정관계 비자금을 관리하는 유서연(김민정) 등이 끼어들면서 현수는 온갖 욕망과 배신, 음모가 꿈틀대는 대한민국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긴박감 넘치는 전개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다. 특히 연신 “오케이, 거기까지”를 외치는 박희순과 자본주의 초엘리트의 가치관을 유감없이 표현해내는 김무열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촬영/편집 김경호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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