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닷컴]
몇 해전부터 스타들이 내놓는 책들이 출판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자서전에서 에세이, 소설, 학습서 그리고 종교 서적까지 그 종류도 폭넓다. 점차 다양한 장르와 전문성을 갖춘 연예인들의 책들은 완성도와 친근함을 제공해 대중들에게 큰 호응으로 얻고 있다.
스타들이 글로 대중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또 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될까. 이에 세계닷컴은 출판을 통해 또 다른 방식의 소통을 선택한 스타들을 만나 이들이 전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장난기 가득한 표정, 섬광처럼 빛나는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알듯 모를 듯한 냉소. 그를 실제로 만나보면 광기와 열정이 깔려 있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흔히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기질적인 격렬함이 어떤 예술가적 행위로 빛을 발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에너지다.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리더인 타블로(본명 이선웅·29)는 지난해 11월 단편모음집 '당신의 조각들'(도서출판 달)을 출간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98년부터 2001년 사이 뉴욕·샌프란시스코·시카고 등지에서 쓴 글을 뒤늦게 펴낸 것이다.
연예인으로서는 드물게 소설집이라는 타이틀로 화제를 모았고 출간되자 마자 그의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불황이었던 출판계에 이례적으로 넉달 만에 16만부가 팔렸고, 최근에는 영문판도 발간됐다.
그의 소설은 팬서비스나 연예계 생활에서 한번쯤 있음직한 유행 같은 도전이 아니다.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그는 사실 음악보다 글로 먼저 세상과 소통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그가 쓴 시가 국내 인기가수의 노랫말로 쓰였고, 대학 재학 때에는 크고 작은 문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TV를 통해 비춰진 그의 엉뚱하고 유쾌한 이미지와, 소설이 주는 무게감과 진지함이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그의 글쓰기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강남의 한 카페에서 타블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첫 소설이 넉달 만에 16만부 이상 팔렸다.
앨범보다 많이 나갔다. 고민이다.(웃음)
- 수익도 꽤 되겠다
출판 수익은 어느 작가나 똑같지 않나.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그냥 냈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거지.
- 어떻게 소설집을 내게 됐나
이병률 시인이 내가 글을 쓴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한번 읽어 봐도 되냐고 하셔서 보여줬었다. 읽어보시더니 너무 좋다고 책으로 내자고 하시더라.
- 가수로 활동한 이미지가 강해 본명인 이선웅으로 책을 낼 수도 있었을텐데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은 했다. 기존의 내 이미지와 너무 다르니까. 그 책은 내가 연예인이 될 거라고 상상도 안 했을 때 쓰였던 글들이다. 다시 읽어보니까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조용히 냅시다’ 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이선웅이 아닌 타블로라는 이름으로 낸 이유는 굳이 그렇게까지 피할 필요가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 원래는 시(詩)를 썼다고 알고 있다.
처음에 글을 쓸 때는 시를 썼다. 대학 입학 시험 볼 때 내가 쓴 시를 책처럼 엮어서 제출해 합격을 하기도 했고. 지금은 시를 쓰지 않는다. 시를 쓰던 것을 랩으로 변형해서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랩이 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인정을 하든 말든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시를 쓰지 않는 이유는 일단 내가 그런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시인이 써야한다. 국내 시인들의 시를 보면 엄청나다. 그건 초능력 수준이다. 정말 잘 쓴다. 시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도가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라져서 안타까울 뿐이다.
- 노래 제목인 '당신의 조각들'을 책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버지와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손을 봤다. 옆에 있던 카메라로 아버지의 손을 찍어 나중에 현상을 해봤다. 사진을 보니까 그 낡은 손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거다. 아버지의 조각 조각들, 다시 말해 눈이나 손이나 입 등 모든 것들은 내가 닮은 것이지 않나. 아버지는 이렇게 고생했는데 내 손으로는 뭘 하고 있나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님을 닮게 되고 그러한 우리의 조각 조각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조각들’이라는 노래도 만들었고, 단편 소설 묶어 책 제목으로도 썼다.
- 첫번째로 수록된 단편 '안단테'는 치매에 걸린 피아니스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외에도 소설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특히 아버지에게 매우 각별한 애틋함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아버지와 닭살 돋을 정도로 각별하진 않다. 현재 나 혼자 독립해 살고 있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굉장히 영웅이다. 특별히 아버지가 뭘 해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자체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 모든 것들이 신화적으로 멋있지 않나. 다른 부모님들도 그렇겠지만 아버지는 나이가 드실 수록 가족들에게 충분하게 해주지 않았다고 미안해하시며 후회하신다. 나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가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자꾸 자책하시니까 그게 아니라고 증명해드리고 싶어서 글로 얘기하는 거다. 뭘 그렇게 바라시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아버지의 사랑이 충분하거든.
-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나
형과 누나가 있다. 막내인데 막내처럼 자라지 않았다. 형, 누나와 8살 5살 터울인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아서 혼자인양 자랐다.
- 음악이나 글쓰기가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건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보였던 재능이 있다면.
많은 가정들이 자녀에게 그렇듯이 나도 어릴 때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 바이올린을 10년간 배웠다.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의 제자였던 중국 선생님에게 8살 때부터 배운 것 같다. 악기는 아직도 집에 있다. 전혀 연주는 안한다.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시는데, 아버지는 교회 찬양 팀 활동도 하시고, 성악도 배우셨다. 엄마는 창(唱)을 취미로 배우셨다. 특별히 나에게 가르치거나 하진 않았다.
- TV 예능 프로에서 엉뚱한 이미지로 많이 비춰졌다. 소설의 진지함과는 사뭇 다른데
사실 나는 10년 전부터 TV를 안보고 살고 있다. 10년간 TV를 연결한 적이 없다. 때문에 드라마나 예능 프로 아무것도 모른다. 가끔 컴퓨터로 미드 정도 볼 뿐이다. 대학 졸업할 때 스스로 결심한 것이 TV를 안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TV를 보지 않나? 몇 개 안되는 채널이고 몇 개 안되는 시선의 정보인데, 이것을 보면 똑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잖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인터넷을 통해 ‘자체적인 언론’을 많이 접하는 편이다.
- TV를 멀리하면서 TV 스타가 되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대학 끝 무렵 때 TV에 나오는 대다수 것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 내가 어느 순간 TV 스타가 됐더라. 4차원 캐릭터로 그려지면서 소위 말하는 예능 단골 초대 손님이 되었는데 정말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막상 나는 TV에 항상 나오고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보고 있는데 정작 나는 TV를 안보고 있다니 참 웃기는 일 아닌가? 한번은 나도 TV를 좀 봐야겠다 싶어 TV를 틀었는데 채널마다 내가 자꾸만 나오니까 더 못 보겠더라.(웃음) 민망해서.
- 그럼 출연했던 방송 모니터링을 한번도 하지 않았나?
한 번도 안했다. 못하겠더라. 내가 너무 안 어울려 보인다. 마치 막 합성한 것처럼.
- 친분 있는 연예들이 많은데 그럼 그들이 어떻게 방송 활동하는지 잘 모르겠다
가끔 식당 등에서 TV를 보게 되는데 ‘무한도전’ 같은 건 정말 훌륭한 프로그램 같다. 유재석 형님이 나오는 건 종종 접한다. 유재석 형님은 정말 예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보고 있으면 정말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오니까 정화되는 느낌이다. 내가 되게 존경하는 사람이다. 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롤 모델로 생각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유재석과 서태지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신다.(웃음)
- 오랜 시간 외국 생활을 한 탓에 한국어보다 영어가 익숙할텐데, 한국어로 글쓰기는 어색하지 않나
‘당신의 조각들’은 내가 이십 대 초반에 미국에서 썼던 글을 모은 단편집이다. 원래 영어로 썼던 책을 내가 한글로 번역했다. 작업하면서 죽을 뻔했다. 너무 힘들어서. 언어라는 게 너무 신기하다. 한글로 생각하는 것과 영어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우리말과 영어는 각각 적합한 표현이 있으니까. 영어로 쓴 것을 한글로 번역하려니까 너무 표현이 어색하더라. 책이 나오고 내가 좀 더 신경을 쓸 걸, 전문 번역가를 쓸 걸, 왜 내가 스스로 한다고 고집을 피웠는지 좀 후회했다. 전문 번역가를 통해 작업을 하면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될까봐 솔직히 노파심이 들었다. 남들은 완벽주의자라고 하는데, 이건 나만의 병이다.
- 자기의 글을 번역하는 것도 그렇게 힘든가
오히려 내 글이라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의도하는 건 이게 분명 아닌 것 같은데 언어로 표현되는 한계가 보이니까 답답한거다. 이제는 익숙해서 번역 일을 해도 될 것 같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빠른 번역가 일거다.
-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재미있다. 음악이 아닌 노래 가사를 쓰며 시작했다던데
난 내가 음악을 하게 될 줄 몰랐다. 그저 ‘노래 가사’만 썼을 뿐이다. 곡은 전혀 만들 줄 몰랐다. 하지만 내 가사에 남의 음악이 들어가니까 제대로 전달이 되는지 의심 스럽더라. 그래서 스스로 곡을 쓰기 시작했고 편곡을 남에게 맡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최고의 작곡가들도 편곡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데 나는 느낌이 너무 다르더라. 그래서 편곡도 배웠다.(웃음)
- 너무 까다로워서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피곤하겠다. 특히 멤버들과의 트러블은 없나
맞다. 주위 분들이 작업하기에 정말 피곤해 한다. 앨범 자켓부터 뮤직비디오까지 내가 옆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못 믿겠다. 이거는 점점 고쳐 나가야하는 문제이긴하다. 사실 어떠한 분야에서 정말 유명한 분들에게 신뢰를 안주면 실례가 되는 거다. 이 사람이 전문가라면 다 맡길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엔 조금씩 시야를 넓혀가고 배워가고 있다. 멤버들이 요즘에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타협은 하지 않겠지만,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니까 변해야한다는 생각도 든다.
- 많이 유해지는 느낌인데, 여자 친구(강혜정)의 영향도 있겠다
(뜸들이며) 그렇다.
- 여자 친구가 당신의 세계관을 이해해주는 편인가
아주 자연스럽게 질문하신다.(웃음) 사실 한번도 이렇게 인터뷰에서 여자친구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여자친구에 대해서 나는 숨길 것도 없고, 숨기고 싶은 것도 없는데 굳이 말해야할 필요도 없다고 느낀다. 뭐랄까. ‘말해 뭐해?’ 하는 느낌. 그 분과는 비전이 비슷하고 그래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연스럽다.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이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 아주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지금 나는 정말 완벽히 행복하고, (여자 친구가)나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정말 고맙다. 여자 친구로 인해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 한다.
- 세계 각국에서 살았는데, 그런 삶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편견이 아예 없다.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 시선에서는 그걸 부정적으로 만들려고 하더라. 내가 ‘저게 어때서?’라고 말을 하면 ‘넌 그게 잘못 된거라고 생각 안해? 그럼 넌 잘못 된거야’라고 하는 식이다.
- 그래서 차라리 글을 쓰기 시작 했나. 노래 가사나 소설을 통해 세상을 비판하는?
어느 순간 내 생각을 말하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에 TV에 많이 나왔을 때 ‘4차원 캐릭터’로 유명하지 않았나. 그런데 난 ‘4차원’이 아니다. 편견 없는 내 생각일 뿐, 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외계인으로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난 인종차별을 다 겪었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맞은 적도 많고 억울하게 점수 깎인 적도 많고 무시 받은 적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절대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겠다 다짐했다. 그게 장점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다. 그래도 글과 음악으로 풀면 상대가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 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 평범하게 한국에서 자랐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똑같았겠지만 사회 밖으로 밀려났겠지.
- 돌발적인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많을텐데
'사회가 왜 이 모양이냐' 한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비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니가 뭔데?’라고 생각하기도 하겠지. 나는 ‘너도 그래야 돼. 사회에 속한 사람이니까’라고 얘기한다. 안타깝다. 자격이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너는 연예인인데 그런 말 하면 되냐' 할지 모르겠지만 자격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 책이나 음악을 통해 말로 못하는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다 나의 이야기다. 근데 특이한 건 책이나 음악으로 하는 얘기는 질타를 안 받는데, 똑같은 얘기를 방송에서 나와 말로 하면 난 끝이다. 아마 매장 당할 거다. 그런 점에서 예술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심의에 걸린 노래만 지금까지 50곡이 넘는다. 노래에 있는 내용들을 방송에서 나와 얘기했으면 날 가만히 안 뒀겠지. 그래서 글쓰기는 운명같은 소통의 방식이다.
- 글쓰기는 스스로에게 정신 치료와 같다고 말했다. 치유 과정이라 생각하며 글을 쓰는 건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 어렸을 때 나는 많이 외로웠다. 인기도 별로 없는 애였고 그 어떤 부류에도 끼지 못하는 애였다. 잘나가는 애들에게는 못나가는 애였고 못나가는 애들에게는 너무 다른 애였고…. 영어 못하는 동양인이었고, 운동 잘하는 애들에게는 왜소한 애였고, 어떤 부류에 끼어도 뭔가 부족했다. 흑인 친구들도 많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고 하니까 동양 친구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의지했던 것이 책이었다. 굉장히 위로가 됐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그런 문화를 통해 다 얻은 거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해야 되지 않나, 내가 받은 걸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되지 않나 싶었다. 실제로 내 팬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 많이 힘들었는데 위로가 됐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 정말 보람을 느끼고 난 내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전업 작가로 살아가고 싶은 생각도 했겠다
사실 작가보다는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조감독 등 스텝으로 영화사에서 일도 잠깐 했었다. 신기하게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연이 닿아서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지만.
- 어린 나이에 작사가로도 활동했다는데
고등학교 2때 김건모 선배님 5집 노래 작사를 했었다. 내 시를 보고 제안이 들어와 참여를 했었다. 내가 쓴 영문시를 보고 'RAINY CHRISTMAS' 영문 작사 제의가 들어왔다. 그때 음악의 길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별 생각이 없었다. 가사 쓰는 건 좋은데 가수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직도 낯설다. 평상시에는 내가 가수라는 것을 잊고 살다가 누군가 와서 ‘사인 해 주세요’ 하면 ‘아, 맞다! 나 가수였지’한다. 아예 망각을 하고 산다.
- 음악과 글쓰기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두고 있나
분명히 소통이기도 하고, 그냥 살아있는 이유 자체가 아닐까.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기도 하면서도 이것이 삶의 의미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삶의 의미다. 좀 복잡한 말인가? 뭔가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행동, 이것만으로 행복하다. 문화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많은데 공감하긴 힘들다. 우리의 영웅들은 진짜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사실 생각해 보면 없는 경우도 많다. 조금씩 서로의 영웅이 되어주고, 나한테 의지하고 난 타인에게 의지하고. 그러면 좀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외면당한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 것, 그것으로 긍정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으면 나는 만족한다.
- 첫 소설집은 20대 초반에 쓰여진 글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시절로 지금 돌아왔다. 한국 나이로는 지금 딱 서른이다. 내가 가수로 데뷔하기 직전의 마음으로 돌아와 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때 알았다면 굉장히 달랐을 거다. 목적지나 행동들이. 이제는 알잖나.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거다. 이제부터 보여주는 것들과 하는 것들은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할 생각이고.
- 그만큼 그 시절이 후회되는 일이 많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사실 후회되는 것 많다. 가장 많이 후회되는 것은 갑자기 유명해졌을 때 어떻게 감당할지 몰라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유명세에 취했던 것 같다. 멍청한 실수를 했을 때도 있고, 부끄러운 때도 있었고. 이제는 뭐가 맞고 틀리고를 알고 있다. 이제부터는 자신 있다.
- 좋아하는 작가나 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헤밍웨이 등 주로 고전을 많이 봐서 다들 아시는 작품들 일거다. 최근 트렌드 소설은 안본다.
- 중편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중편소설은 지금 시작하고 있다. ‘당신의 조각들’이 10년 걸렸으니까, 중편소설도 그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처음엔 20년 쯤 걸리지 않을까 그랬는데 글쎄 기다려봐야지. 영감이 와서 써질 수도 있고 오래 걸릴 수 있고.
- 곧 '에픽하이'의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을 앞두고 있다는데
오는 3월 말 경에 '혼(魂) 맵 더 소울(map the soul)'이라는 새 앨범으로 팬들을 찾을 예정이다. 깜짝 놀랄만한 형식이다. 기대해도 좋다.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사진 황재원 기자 jwstyle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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