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장재록씨가 자신이 먹으로 그린 자동차 앞에 서 있다. |
“제 그림을 보고 어떤 분들은 ‘이런 것도 동양화냐’며 못마땅해 하기도 해요. 전 도시에서 태어났고 도시 풍경과 차를 보며 컸어요. 전통 산수화가 과거 풍경을 그리고 있다면, 저에겐 도시 풍경이 주된 그림 소재가 되는 것이죠.”
그의 작품 속 차들은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머스탱, BMW, 벤츠, 아우디, 벤틀리 등 외제 일색이다. “일부러 비싼 차 또는 외제차를 그리려 한 게 아니에요. 차마다 멋있는 부분을 찾다보니 유독 외제차가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차마다 앞부분 또는 옆부분을 부각해서 그렸어요.”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작품들은 전보다 더욱 세밀하고 섬세해졌다. 또 자동차 외에 주변 풍경을 화면에 끌어들였다. 자동차 앞유리에는 길가 가로수와 가게 등이 비친다.
그는 동양화학도로서 예전엔 수묵화 등을 그렸지만 “남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이 나와 맞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좋아하는 걸 그리니 신나요. 점차 자동차 형상이 나오면 마치 내가 차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특히 작업실에서 자동차 그림들을 죽 걸어놓고 있으면 내가 이 차들의 주인이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요.” 그는 고급 승용차를 통해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남성의 자동차 로망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물질적 욕망을 그려내는 그를 여전히 동양화가로 부를 수 있는 것은 바로 먹 때문이다. 그는 우선 캔버스에 연필로 스케치한 뒤 가장 진한 농먹에서 중묵, 담묵까지 순서대로 칠한다. 먹의 필치만 빼고는 모든 작업이 동양화 작업과 유사하다. 정확한 경계 없이 스며드는 먹의 효과는 그림을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보이게 한다. 그림을 조금 멀리서 보면 자동차가 세밀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단지 먹으로 채운 공간일 뿐이다.
먹은 유화물감과 달리 번지는 특성을 지닌 소재다. 이를 최대한 막기 위해 면으로 된 천 뒤에 종이를 붙여 그리지만 어느 정도 번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처음엔 그림을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보면 먹이 번져서 작품을 여러 차례 버리기도 했다. 이젠 먹 번짐을 고려해 어느 정도까지 먹칠을 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서양화가 발산 이미지라면 먹은 흡수 느낌이에요. 아크릴로 그려봤지만 이질감도 들고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전 먹의 새까만 느낌이 좋아요. 스밈과 번짐의 재미도 있고요. 제가 수묵화와 문인화 등 동양화를 습득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이 나온 겁니다. 앞으로도 동양화 기법을 유지하면서 소재를 확장해 나갈 생각입니다.”
글·사진=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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