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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니 '진짜 음악'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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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05 18:25:23 수정 : 2009-04-05 18: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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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명을 위한 무대 EBS ‘스페이스 공감’ 5주년 공연 현장
한 무대에서 재즈와 국악, 록이 어우러지는 공연. 방송에서 보기 힘든 국내외 음악인이 오로지 151명의 관객을 위해 서는 무대, 그리고 모든 공연이 무료인 곳. 바로 EBS ‘SPACE(스페이스) 공감’이다. EBS의 무료 공연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이 지난 1일 5주년을 맞았다. 2004년 4월1일 개관한 이래 매주 주말을 제외한 5일 라이브 공연을 고수해온 ‘스페이스 공감’에는 지금까지 총 1225회 공연에 5400여명의 뮤지션이 다녀갔다. 프로그램 모토처럼 ‘진짜 음악이 있는’ 스페이스 공감의 5주년 공연 현장을 찾아가 봤다.

◇지난 1일 서울 도곡동 EBS 본사에서 열린 ‘스페이스 공감’ 개관 5주년 무대에 소리꾼 장사익이 재즈밴드와 함께 공연하고 있다.
EBS 제공
■151석 공연의 기적

지난 1일 오후 7시30분 서울 도곡동 EBS 본사. 기타리스트 정재열이 이끄는 재즈 밴드가 첫 곡으로 가곡 ‘목련꽃 그리움’을 재즈로 연주한 뒤 고석용, 고석진 형제가 장구와 꽹과리를 들고 무대에 올라왔다. 이어 국악리듬과 재즈가 어우러진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 연주된 뒤 소리꾼 장사익이 등장했다. 151석의 작은 객석이지만 중학생부터 회사원, 중년 부부 등 다양한 층의 관객이 하나가 돼 환호했다. 좀처럼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 공연도 일 년에 몇 번 안 하는 장사익을 5m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선택받았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스페이스 공감’의 백경석 PD는 “솔직히 처음에는 주중에 매일 공연하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할지 확신이 없었다”며 “주변에서도 3개월 하면 아이템이 떨어질 거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소프라노 신영옥이 첫 무대를 연 뒤 가수 김창완, 한대수, 신중현, 함춘오 등 거장들은 물론 최근 인디밴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도 이 무대를 거쳐갔다. 제이슨 므라즈, 데이빗 란츠, 클로드 볼링 등 내한공연을 온 외국 음악인들 역시 단 151명의 관객만을 위한 무대에 주저없이 올랐다.

이제는 일주일에 국내외 10∼20팀의 음악인들이 먼저 공연을 제안하거나 CD를 보내온다. 클래식, 민중가요, 퓨전 국악, 월드뮤직, 뉴에이지, 일렉트로닉, 하드코어 등 장르도, 세대도 구분이 없다.

물론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와 높지 않은 시청률 때문에 여전히 출연을 고사하는 음악인도 있다. 화려한 조명도, 웅장한 백업 밴드도 없이 1시간 내내 라이브로 모든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는 것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을 터. 가장 보기 좋은 모습으로 가장 잘하는 노래 한두 곡을 하던 기존 방송 관행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스페이스 공감’ 무대는 화장 지우고 옷 벗고 나오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고현미 PD는 “음악인들이 ‘공감’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연습을 위해 출연 일정을 미뤄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제작진이 음악인을 선정하는 가장 큰 기준은 예술성과 함께 라이브 실력이다. ‘음악은 원래 라이브로 들어야 재밌다’는 단순명료한 대답은 ‘스페이스 공감’ 제작진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철학이기도 하다.

■음악인에 대한 존중이 만든 성공

무료공연에 과연 어떤 뮤지션을 얼마나 섭외할 수 있을까도 고민이었지만 초창기에는 151개의 객석을 다 채우기 힘들 것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명품 공연’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인터넷 무작위 추첨에 지금까지 총 25만1638명이 관람신청을 했다. 그리고 평균 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만8740명이 무료관람의 행운을 누렸다. 골수 팬도 많아 200회 이상 신청한 열혈회원이 254명에 달한다. 최다 신청자인 30대 회사원 김은영씨는 총 1225회 공연 중 1156번 신청해 100회의 공연을 관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어떤 효과장치에도 기대지 않고 음악만으로 승부를 겨뤄야 하는 비좁은 무대, 뮤지션의 날숨소리까지 전해질 만큼 무대와 가까운 객석. 이처럼 한계로 느껴졌던 협소한 장소는 ‘스페이스 공감’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실력 있는 혹은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음악인들이 가장 서고 싶은 무대가 됐다.

시청자와의 상시 만남을 위해 기획한 소극장 공연이 EBS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국내 음악프로그램 중 독보적인 존재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제작진은 “음악과 뮤지션에 대한 존중”이라고 설명한다. 방송이란 수단으로 출연자를 대하는 게 아니라 음악이란 예술작품을 만든 주인공을 모시듯 음악과 음악인을 대해온 것이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 공감’은 선곡부터 함께할 밴드 선정까지 모든 무대를 음악인에게 완전히 내주고, 원한다면 후반 믹싱 작업도 스스로 하게 해준다.

제작진은 “우리가 음악과 음악인을 선택하는 기준에 관객들이 공감하고 신뢰를 주는 것 같다”며 “음악인에 대한 환호가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로 바뀌어 ‘잘 모르는 음악이지만 ‘스페이스 공감’에서 선택해서 보러간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감격스럽고 책임감도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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